페인트(이희영) - 부모와 자녀는 어떤 관계일까

매년 한국의 출산률은 역대급 저조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원인은 다양하다. 문제는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한 시설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페인트

줄거리

NC센터는 국가가 출산율 저조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시설이다. 아이를 낳았지만 키우기가 부담스러운 부부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NC에 아이를 맡길 수 있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양육받은 후 12세가 되면 부모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가 되기까지 부모를 만나지 못한다면 20세 되는해에 NC센터를 나가야했다. 이렇게 나가게되는 아이들은 NC센터 출신이라는 것이 꼬리표처럼 붙고 사회에서 차별을 받았다. 반면 부모를 찾게 되는 아이들은 그 즉시 모든 기록이 사라져 완전한 신분 세탁이 가능했다. 

NC센터를 통해 자녀를 양육하게 되는 부모들은 국가로부터 막대한 혜택을 누리게  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선택권은 전적으로 아이에게 있었다. 이러한 NC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제노 301은 까칠하지만 똑똑한 18세의 청소년이었다. 

제노 301은 NC센터에서 지내지만 시스템에 불만이었다. 그리고 혜택을 받기위해 센터를 찾는 어른들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센터장으로 있는 가디 '박'과 '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NC기준에는 못미치는 터무니없는 부부가 제노 301과 면접을 하게 된다. 

그 부부와 면담을 면서 제노는 부모와 자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되고, 그 즈음에 가디 '박'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의식에 눈을 뜬다. 결국 NC센터에 계속 남게되는 제노는 그렇지만 부모에 대해 그리고 자녀에 대해 한층 성숙한 생각을 갖게 된다.  

밑줄들 

NC에서 생활할 수 있는 연령은 열아홉 살까지였다. 그 뒤로는 센터에서 나와 자립해야 했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NC 출신들을 차별하고 냉대하는 분위기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NC 출신과 자신들을 구분 지으면서 특권 의식을 느꼈다. 낳아 준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에게 NC 출신은 자신과 결코 같을 수 없었다. 마치 사람을 빼닮은 헬퍼에게 그러듯, NC 출신을 향한 사람들의 혐오는 공기처럼 퍼졌다. - < 페인트, 이희영 > 중에서

허공을 바라보던 노아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로 돌아왔다. “행복에 겨운 새끼들이지. 낳아서 키워 주고 돌봐 줬는데 부모가 귀찮다? 나쁜 자식들이야, 진짜. 이렇게 말이야.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어.” “…….” “부모들도 저 녀석들을 귀찮아하지 않을까? 저 녀석들에게 짜증도 내고 화도 내지 않았을까? 나는 절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 < 페인트, 이희영 > 중에서

무엇보다 부끄러웠다. 박과 최, 아키와 노아 앞에서 잘난 척하면서 떠들곤 했던 나 자신이……. ‘세상 어떤 부모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잖아요.’ ‘부모를 결정하는 선택권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아닌가요?’ 쿵쾅거리던 심장이 차차 가라앉았다. 가슴속으로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갔다. 사람들이 NC 센터를 오해하듯이 나도 나만의 틀 속에 세상을 가둬 놓고 그게 전부라고 믿었다. 그 너머를 상상하지 않으려 했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시선으로 무엇이든 멋대로 평가해 온 것이다. - < 페인트, 이희영 > 중에서

아이들은 페인트를 준비했다. 자신의 삶을 전혀 다른 색으로 물들여 줄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멋지게 색칠하기 위해서……. 나는 때때로 센터 건물을 바라보았다. 박은 아버지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박의 아버지는 용서를 빌었을까. 박의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 < 페인트, 이희영 > 중에서

독립이란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말처럼, 어쩌면 부모 역시 자녀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자녀가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닌 기쁨으로 여기는 것, 자녀로부터의 진정한 부모 독립 말이다 - < 페인트, 이희영 > 중에서

개인평점 3.5 / 5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는 현재 대한민국의 사정을 잘 담아내고 있는 소설이다. 출산율을 해결하기 위해서 NC센터를 설립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부모 대신 양육하여 12세가 되는해부터 부모를 찾게 해주는 시스템은 어쩌면 출산율 해결에 좋은 방법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지금 그렇게 하지 않는가? 생각이 들었다. '고아원'이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NC센터의 형태는 고아원과 일치한다. 

물론 고아원은 적극적으로 입양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지만 19세가 지나면 나가야 하고, 고아원출신의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니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고대로 담겨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소재가 신선하기 보다는 이것을 합법화한 시스템으로 설정했다는 것에서 흥미를 느꼈을 뿐이다. 불법을 합법화 시킨 NC센터의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꼈다. 

책은 제노 301을 통해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이야기하는 듯한 내용은 '부모도 자식도 서로에 대해서 완벽한 존재는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서투른 두 존재가 서로를 이해하고 합의해가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왜 부모에게만 자격을 따지고 자질을 따지세요? 자식 역시 부모와 잘 지낼 수 있는지 꼼꼼하게 따지셔야죠. 부모라고 모든 걸 알고 언제나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은 버리라고 하셨잖아요. 부모라고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요.”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인정한다.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오는 프리 포스터들도…….” “혜택을 따지는 프리 포스터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우리 역시 사회적인 차별을 피하기 위해 부모를 찾는 거니까요. 우리는 다 열세 살이 넘었어요. 오히려 부모와 멀어지는 시기라고요. 가장 예민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부모를 원한다는 게 무슨 뜻이겠어요? NC 출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인 거죠. 물론 정말 아이를 원하는 프리 포스터들도 있겠죠. 진심으로 부모의 사랑을 원하는 아이가 있듯이.” - < 페인트, 이희영 > 중에서

어쩌면 굉장히 씁쓸한 이야기인데 이러한 생각이 오히려 부모와 자식의 성숙한 독립을 가능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작가는 자신이 참부모의 자격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굳이 참부모, 참자녀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결국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등의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부모는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다. 

언젠가 선생님은 “이야기는 찾아온다.”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경우 “나는 참 부모 자격이 없구나.” 하는 푸념 속에서 제누와 아키, 노아가 찾아왔다.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에게 갔다면 훨씬 근사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을 텐데, 안타깝고 미안하다. 이것은 내가 나의 아이에게 느끼는 미안함과 같은 것이다. 더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더 행복했을 텐데.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나를 찾아온 이 생명들을 나는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 - < 페인트, 이희영 > 중에서

책을 읽은 내내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생각이 났다. 두 책은 입장과 내용이 전혀 다르지만 말하고 있는 것은 하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자식이 자신이 원하는 부모의 모습이 있듯이 부모도 부모가 원하는 자식의 모습이 있다.' 

여러모로 부모와 자식 아니, 가족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한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