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아델은 유능한 의사인 남편 르샤르와 사랑스러운 아들 뤼시앙과 평범하지만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그렇지만 아델은 늘 무언가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사는 것도 사실이다. 아델은 그런 갈증을 외도로 풀고 있었다.
그런 욕망이 너무 강해지다 보니 아델은 남편의 동료 의사와도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에 이른다. 어느날 남편은 동료의 부탁으로 야근을 대신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그 당시에 남편에게 야근을 부탁했던 동료는 아델과 부적절한 욕망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아델은 죄책감을 느껴야 했지만 그 전에 먼저 두 사람의 불륜이 발각되고 만다.
남편 르샤르는 그동안 아델의 문란한 성생활을 알고 경악한다. 하지만 이혼은 하지 않았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서 다시 평안한 가정을 꾸리고 살자고 제안한다. 아델은 이혼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남편의 뜻을 따라 시골로 내려간다.
이제 아델 안에 있는 욕망이 모두 잠재워졌나 싶었을 때 아델의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홀로 장례를 위해 파리로 간 날. 남편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아델은 다시 길거리로 나가 자신의 욕망을 푸는데 정신을 빼앗긴다.
한편 집에서 아델을 간절히 기다리던 르샤르는 이제 모든 것에 피로를 느끼며 포기한다.
밑줄들
아델은 결혼한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이유로 아이를 낳았다. 세상에 귀속되어 타인들과 그 외 모든 것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아델은 누구도 그녀로부터 제거할 수 없는 존중의 후광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고통의 저녁에 몸을 숨기고, 방탕의 나날에 기댈 곳이 되어줄 피난처를 스스로 만들어나갔다. - < 그녀, 아델, 레일라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중에서
아델은 앞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아이의 몸을 질질 끌고 간다. 행인들이 전부 아델을 바라본다. 그녀는 천천히 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인내심을 가지고 아들과 보내는 한순간 한순간을 만끽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오늘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아들을 가급적 빨리 보내버리는 것이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 < 그녀, 아델, 레일라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중에서
에로티시즘은 모든 걸 위장해주었다. 사물의 평범함, 덧없음을 에로티시즘이 가려주었다. 여고생의 오후에, 생일 파티에서, 아델의 가슴을 곁눈질하던 노총각 삼촌이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가족 모임에 탄력을 준 것도 에로티시즘이었다. 에로티시즘의 추구가 모든 종류의 규율과 체계를 소멸시켰다. 우정, 야망, 일상적인 계획, 모든 게 에로티시즘 앞에서 무너졌다. - < 그녀, 아델, 레일라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중에서
리샤르는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지리한 부부는 무슨 비밀을, 무슨 균열을 감추고 있는 걸까.
“어떤 것 같아?”
리샤르가 아델에게 묻는다.
“글쎄, 친절한데.”
“남자는? 남자는 어떻게 보여?”
아델은 개수대에서 눈을 들지도 않는다.
“벌써 말했잖아. 친절한 사람들 같다고.”
아델이 방으로 올라간다. 창문을 통해 덧창을 닫는 베르동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아델은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않는다. 그를 기다린다 - < 그녀, 아델, 레일라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중에서
그녀가 두려워하는 건 남자가 아니라 고독이다. 누가 됐든, 누군가의 시선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는 것, 무심한 익명이 된다는 것, 군중 속의 하찮은 돌멩이가 된다는 것이 두렵다. 이동 중이므로 도망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자.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안 돼,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 < 그녀, 아델, 레일라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중에서
느낀점
'그녀, 아델'을 처음 읽었을 때 레일라슬리마니의 책이 맞는가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녀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달콤한 노래'와 비교해 보았을 때 분위기가 아주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다가 보니 아주 다른 것은 아니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 아델'은 아델의 끊임없는 욕망 추구에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델이 이렇게 된데에는 어려서 겪었던 가정환경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무관심한 어머니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델은 누군가의 관심이 삶에 있어 중요하다.
어쨌거나, 아델은 더 이상 대화를 듣고 있지 않다. 그녀는 어딘가 불편하고 씁쓸하다. 오늘 저녁, 그녀는 없는 사람 같다. 아무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그녀의 얘기를 듣지 않는다. 이제는 마음이 찢어지고 눈꺼풀을 파르르 떨리게 만들며 언뜻언뜻 스쳐가는 생각들을 좇으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식탁 아래 그녀의 다리가 떨린다. 벌거벗고 싶다, 누군가 그녀의 가슴을 만져주면 좋겠다. 그녀의 입술 위로 다른 입술을 느끼고 싶다. 고요한 짐승을 느껴보고 싶다. 누군가 자신을 원해주기만을 간절히 바란 - < 그녀, 아델, 레일라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중에서
그렇게 관심받고 싶은 욕망이 삐뚤어져 잘못된 형태로 표출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꼭 그것만이 원인은 아닌듯 하다. 나중에는 그것을 스스로 즐기며 찾아다니느데 이르기 때문이다.
그 욕망을 위해 아이까지 내팽겨칠 수 있고, 남편의 동료와 부도덕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면 스스로 절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아델의 욕망에 문제가 있는듯도 보였다.
제어 능력을 상실한 욕망, 주체를 짓이기고 피어오르는 욕망은 이제 쾌락과는 점점 멀어져 폭력이 된다. 그것은 어쩌면 욕망을 억누르고자 스스로에게 휘두르는 폭력이 아닐는지. 식인귀처럼 아델을 집어삼킨 욕망은 그녀의 육체 속에서 기어이 절망이 되고 질병이 된다 - < 그녀, 아델, 레일라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중에서
어떻게 보면 안쓰러운 아델이다. 레일라슬리마니는 이 책이 그저 불륜, 배신, 거짓말과 같은 소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아델이 표현한 욕망은 받지 못한 사랑의 삐뚤어짐이다.
이는 '달콤한 노래'에서 안정에 대한 욕구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른 한 여성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수많은 노래들에서 사랑을 노래하고, 종교에서 사랑을 외치지만 정말로 받아야 할 사랑을 잘 받고 살고있는가? 여러가지로 자극적이지만 씁쓸한 그런 소설이었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