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던 딸의 이야기다. 장례를 치루는 3일동안 조문객들을 통해 들은 아버지의 삶은 딸이 알고 있던 삶과는 달랐다. 그속에서 딸은 아버지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1.줄거리
아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때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해방이후 사회주의의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빨치산 활동을 했지만 결과는 쓰디 쓴 패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사회주의자로서의 삶을 놓지 않고 작은 마을에서 그 사상을 실천하며 살았다.
하지만 가정은 늘 가난했다. 뿐만 아니라 빨치산이라는 아버지의 전적은 아버지 뿐 아니라 가족들과 친척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어서 불이익을 받게 하였다.
이런 아버지를 아리는 이해하지 못했고 아리의 눈에는 그저 생활력 없이 오지랖만 넓은 실패한 빨치산일 뿐이었다. 그랬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게된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릴르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중략)...누가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p.7).
아리는 장례를 치루는 3일동안 마을 사람들과 조문객들로부터 아버지와의 추억을 듣게된다. 그럴때마다 아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다. 한명 한명 조문객과 대화를 나누면서 떠올려지는 아버지는 그동안 자신이 생각했던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었음을 서서히 알게 된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펀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p.249)
그리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아버지가 빨치산 때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였음을 인정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념대로 살았을 뿐이다. 다만 그러한 사실이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원망하고 미워하고 이해하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멀리 더 높이. 그렇게 동동거리며 조바심 치며 살다가 알게 되었다. 빨치산의 딸이므로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p.267)
너는 대체 어떤 딸이었냐고.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 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나는 평생을 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말에는 ‘빨치산’ 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 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pp.224-225)
아버지의 해방일지
2.느낀점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기전에 제목만 보고 내용을 짐작했었다. 제목만 봐서는 오랜시간 가정을 위해 애썼던 가장이 어느 순간 일만 하던 자신을 발견하고는 잊었던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내용이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빨치산이라는 단어가 초반에 등장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그럼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누명을 벗는 내용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아닌 딸의 해방이었다.
누구나 아버지가 있지만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이 갔던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속의 아버지의 모습은 그 시절의 아버지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자신이 겪는 모든 불편은 부모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환경을 탓하면서 남들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거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주인공인 아리도 그랬다.
그래서 원망했고,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부모들도 처음 부모가 되어봤다. 그렇기에 떨리고 무섭다. 하지만 자식이 있기에 나름 최선을 다하면서 살 뿐이다. 자식들은 그런 부모도 사람이라는 것을, 한때 꿈많은 젊은이었다는 것을, 부모도 자식에게 원하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않는 것 같다. 반성을 하게 되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어린시절이 많이 떠오르게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그리워지게 하는 책이기도 했다. 좋은 소설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3.책소개
1)작가 소개
정지아 작가는 1965년 구례에서 출생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엣 박사과정을 마친후 1990년 '빨치산의 딸'을 집필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숲의대화', '행복' 등이 있으며, 김유정문학상, 이효석 문학상등을 수상했다.
2)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갑작스럽게 죽은 아버지의 딸 아리가 장례를 치루면서 만나게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내용으로 자전적 소설이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을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 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딸을 대장부의 몸으로 낳아주신 것도, 하의 상의 인물로 낳아주신 것도 다 이해할 터이니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 어쩌겠어요?그게 아버지 딸인 걸. 이 못난 딸이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칩니다.(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