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줄거리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그녀는 없다.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를 소멸시킬 때의 강렬한 촉감이 아직도 손 마디마디에 남아 있었다. ‘남편이 아는 것 같아. 이참에 이혼하려고. 당신 아이를 갖고 싶기도 하고.’ 괜찮지 않다. 그는 분노했다. 그녀를 만나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관계라고는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 더블, 정해연 > 중에서
불륜관계인 애인을 죽인 도진은 별다른 감정 없이 경찰서에 출근한다. 강력계 형사인 도진은 원래라면 죽인 애인과 휴가를 갈 생각이었다.
잠깐 경찰서에 들른 도진은 짐을 챙겨 휴가지로 정했던 한 캠핑장에 간다. 그런데 캠핑장 숙소에서 시체를 발견하고는 이상한 흥분에 휩싸여 시체를 토막내 야산에 버린다.
잔인성에 대한 흥미는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런 순간이 도진은 재미있다. 세상이 경악할 만한 범죄가 벌어지면 사람들은 기사를 찾아보고 그 잔인성에 혀를 내두르지만, 손은 빠르게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찍힌 현장 사진과 자극적으로 묘사된 기사를 찾는다. 로맨스 영화는 300만 관객을 넘기 힘들어도, 살인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화제를 몰고 오고, 관객이 넘친다. 누구에게나 숨겨진 어둠이 있다. - < 더블, 정해연 > 중에서
국회위원의 소재를 파악하던 중 도진이 머무른 캠핑장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장주호는 도진의 행동을 유심히 살핀다.
장주호의 끈질긴 추격으로 범인으로 지목된 도진은 동료형사를 죽인 후 달아난다. 쫓고 쫓기는 공방전 끝에 결국 도진은 장주호에게 잡힌다.
하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범인이 붙잡히고 만다. 그렇게 사건이 해결되는 듯 보였지만 도진과 장주호의 일거수 일투적을 다 보았던 선우신은 또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권력이라는 것은 참 재미있었다. 권력은 그를 더 부유하게 하고, 그 부유가 다시 권력이 된다. 가끔, 예전의 꿈을 꿀 때도 있다. 수사 중 살해당한 양 형사의 죽음에 슬퍼하는 자신의 모습, 존경하던 선배의 범죄 행각에 경악하던 모습. 하지만 그 모습들은 모두 순식간에 사라졌다. 장주호 팀장이 승진을 제안했던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한 사람의 범죄를 눈감아주면, 그것은 돈과 권력으로 돌아온다. 그 사실을 그때 배웠다. - < 더블, 정해연 > 중에서
더블
책속밑줄
가사도우미를 강간했던 열일곱 살의 그때도. 도진을 혼내기는커녕 눈 깜짝할 사이 모든 일을 처리했다. 강간당했던 가사도우미는 거액의 돈을 받고 서울을 떠났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두 사람은 도진의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알아서 해치웠다. 아무도 도진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다. 도진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도진의 눈치를 보았고, 그것은 가정이 깨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 - < 더블, 정해연 > 중에서
하루 종일 누군가의 뒤를 쫓고, 영업사원도 아닌데 실적에 쫓겨야 한다. 위염은 기본이고, 궤양은 선택이다. 잠자는 시간이 일정키를 바라는 건 사치고, 외진 곳에 잠시라도 차를 세울라 치면 경찰 새끼가 자러 왔다는 소리를 듣는다. 양말 한번 제때 갈아 신지 못해 발가락은 다 갈라져도 달려야 한다. 취조하면 인권 유린이라도 하지 않았나 기자들이 눈을 번뜩이고, 범인 대신 쏟아지는 계란 세례를 온몸으로 막다 보면 악플러가 움직인다. 어떻게든 잡아넣으면 과잉수사고, 놓치면 부실수사다. 그렇게 살다 죽으면 그제야 불쌍하다는 소리 한번 듣는다. - < 더블, 정해연 > 중에서
정의 구현이 경찰의 본분인 것으로 착각하는 풋내기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눈치도, 타협도 빠른 놈이었다. 하긴, 세상에 정의 따위는 없다. 정의는 살아 있지 않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다만 그 이익이 적으면 희생이라 부르고 이익이 많으면 속물이라 말할 뿐이다. - < 더블, 정해연 > 중에서
자네 요즘 아주 잘나간다는 소식 들었어. 승진한 월급이 엄청 나나 보지? 강남 오피스텔에, 고급 외제차에.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두라고. 네가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여겼던 그 동아줄은 언젠가 네 목을 조일 거야.’ - < 더블, 정해연 > 중에서
더블
느낀점
10년 전,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보고 이 소설을 썼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 이야기가 아직도 쓰일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 씁쓸하다. - < 더블, 정해연 > 중에서더블-정해연
'더블'의 정해연 작가는 소설 '더블'을 쓰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일들은 이미 메스컴을 통해서 너무나도 흔하게 접하게 된 사실들이다.
'더블'을 소개하는 리뷰나 관련 글들을 보면 사이코패스 대 사이코패스의 대결이라는 소재를 강조해서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사이코패스 대 사이코패스라는 대결 구도는 사실 등장 하지 않는다. 다만 얽히고 꼬인 관계라는 사실만 드러날 뿐이고 그에 대한 복수를 할 뿐이었다.
오히려 작가는 마지막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선우신을 통해 진짜 하려던 말을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악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에서는 학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진이 사이코패스가 된 것도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학습하게 된 결과였다.
장주호가 변하는 과정 역시 권력에 길들여지기 시작 하면서부터다. 그리고 선우신 역시 이 모든 것을 선배들로부터 학습하여 행동한다.
물론 그래서 악은 불가항력적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악으로 빠져들려고 하는 분기점에서 제대로 된 처벌과 교육이 있었다면 전염되는 악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사회에 솜방망이 처벌, 촉법, 심신미약 등 적당한 처벌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인권, 교육, 나이 등 여러 가지 고려사항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가는 꼴이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단순한 추리소설인 줄 알고 읽었지만 재미있었고, 깊이 있었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