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한 소년이 감정을 찾아가는 성장소설이다. 나이가 들면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일부 어른들에게 이 소설은 잃었던 공감능력을 다시 찾도록 인도한다.
아몬드
1.줄거리
윤재는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지 못한다. 머릿속 아몬드라 불리는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이러한 윤재의 특별함은 엄마와 할머니의 따뜻한 보살핌 덕에 아무 탈 없이 잘 자라날 수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때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홀로 지내게 된다 .
이후 심박사의 보호아래 엄마가 남겨놓은 서점을 운영하며 윤재는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한 사건으로 인해 윤재 앞에 곤이 나타난다.
그 역시 어두운 상처를 지닌 아이. 곤이는 윤재를 괴롭히려 하지만 윤재와 함께 지내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윤재 역시 곤이와 지내면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윤재앞에 나타난 또한명의 아이 도라가 있었다. 윤재는 곤이와 도라와 함께 보내며 인간이 갖는 여러 감정들을 배워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곤이가 가출을 하고 질나쁜 패거리들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재는 곤이를 구하러 가고 그곳에서 죽다가 살아난다.
그 사건 이후 곤이와 윤재는 더욱더 가까워지고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의식이 없었던 엄마가 병원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윤재는 엄마를 안고 눈물을 흘린다.
아몬드
느낀점
'아몬드'는 예전에 한번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어서 기억나는 장면이 없었다. 이
이번에 아몬드를 다시 읽어야 할 일이 있어서 두 번째 읽은 것이다. 처음과는 다르게 '아몬드'를 읽으며 많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는 흔한 청소년 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소설이라 생각된다. 물론 학원폭력물을 방불케 하는 장면도 많이 섞여 있다.
하지만 윤재와 곤이의 상반된 모습. 그안에서 진짜 감정을 찾아가는 내용은 현대화 되면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부족을 호소하는 사회에 필요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몬드'는 편도체에 문제가 있어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윤재가 곤이와 도라를 만나면서 서서히 감정을 찾아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내용을 잃다보면 오히려 감정을 찾아가는 윤재와 달리 감정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가 감정불능증이냐를 책을 통해 또렷히 보여준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감정이 매마른 사람들을 상태의 심각도에 따라 출현시킨다. 자식의 죽음을 몰랐던 수퍼마켓아저씨, 살인자, 여론들, 선생들, 그리고 철사에 이르기까지.
결국 타인에 공감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만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철사와 같은 살인자가 될 수 있다. 최근들어서는 암울한 이야기보다 긍정적 소망이 있는 책들이 가슴에 와닿는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은 타인에 공감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에만 중요시한다. 그렇기에 그 감정은 폭력으로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나르시즘 등 요즘은 공감능력의 부족에 대한 다양한 범죄용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공감능력 부족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무관심해지는 사회. 그렇지만 자신의 감정은 중요해서 분노는 들끓는 분노사회.
오히려 윤재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것을 배워야 한다. 작가의 말처럼 공감능력을 회복하여 타인에게 손을 내밀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소망을 생각해보았다. 좋은 책이다.
아몬드
책속밑줄
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튀지 말아야 돼. 그것만 해도 본전이야." 그말을 들키지 말라는 뜻이었다.
남들과 다르다는 걸. 그걸 들키면 튀는 거고 튀는 순간 표적이 된다. 단순히 차가 다가오면 몸을 피하라는 수준의 지침으로는 부족했다.
스스로를 감추려면 고도의 연기가 필요한 타이밍이 온거다. 엄마는 지치지도 않고 상상력을 발휘해 극작가 수준으로 대화 내용을 덧붙여 갔다.
이제는 상대가 던지는 말 속에 담긴 '참의미'와 , 내가 하는 말에 담겨야할 '바람직한 의도'까지도 함께 짝지어 외어야 했다. (p.32)
남자의 삶과 기록들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자, 대중의 관심은 사건 자체보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사회학적 조명으로 바뀌었다.
남자의 삶이 자기네들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중년 남자들은 비탄에 빠져 탄식했다.
남자에 대한 동정 여론이 퍼지기 시작했고, 초점은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대한민국의 현실로 옮겨 갔다. 누가 죽었는지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중략)...
장례식장에 온 여경하나는 유족들에게 절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출 줄을 몰랐다.
조금 뒤 나는 그녀가 복도끝에서 나이 많은 남자 경찰에게 혼나고 있는 걸 봤다. 앞으로 이런일은 부지기수로 보게 될거야.
그러니까 무뎌지는 법을 터득해야 해. 순간 그와 내눈이 마주쳤다(pp.57-58)
엄마는 늘 집단생활에서는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었다. 엄마가 내게 그 지난한 교육을 시킨 것도, 내가 그 희생양이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할멈이 사라진 지금 엄마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아이들은 내가 어떤 얘기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금세 눈치챘고,
그러자 별로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짓궂은 농담을 퍼부었다...(중략)...교사 회의에서도 내 얘기가 나왔다.
내가 튀는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나의 존재 자체로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고 학부모들이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선생님들은 나의 상태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p.80)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관한 뉴스다. 화면을 보고있는 심박사의 얼굴은 무표정하다. 내 인기척을 느낀 그가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자 다정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내 시선은 미소 띤 박사의 얼굴 뒤로 떠오른 소년에게 향해있었다.
나같은 천치도 안다. 그 아이가 아파하고 있다는 걸. 끔찍하고 불행한 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걸. 하지만 묻지 않았다.
왜 웃고 있느냐고, 누군가는 저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등지고 어떻게 당신은 웃을 수 있느냐고..비슷한 모습을 누구에게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중략)...
그들은 눈앞에서 그 일을 목도했다. 멀리있는 불행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거리였다. 당시 성가대원중 한사람이 했던 인터뷰가 뇌리에 떠다녔다.
남자의 기세가 너무 격렬해, 무서워서 다가가지못했다고.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pp.217-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