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황홀한 순간(강지영) - 비참함 속에서도 삶은 이어져야한다

'거의 황홀한 순간'은 '킬러들의 쇼핑몰'로 유명세를 얻은 강지영 작가의 작품이다. 평소 강지영작가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구독서비스에서 추천도서로 뜨길래 이참에 한번 읽이보자 해서 읽어보았다. 

거의황홀한순간

1.줄거리

연향이란 작은 도시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하임은 기차개찰구에서 근무하는 지완과 썸을 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어느날 연향역에 한 여자가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옛날 애인일까, 하지만 어젯밤 들은 지완의 첫사랑은 교회에서 만난 한 살 연상의 키가 작고 통통한 성악도였다. 파리한 낯빛의 여자는 지완에게 목례를 하곤 오른쪽 어깨를 조금 내려 숄더백에서 기차표를 꺼내 지완에게 건넸다. 그걸 받아 드는 지완의 뒷모습이 간신히 형태만 유지한 유적지의 석탑처럼 아스라해 보였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와 지완의 눈빛이 한곳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단 걸 느낄 수 있었다. - < 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 중에서

지완이 보고있는 여자는 무임. 무임은 어렸을 적 남편 희태로부터 성폭행을 당한후 민아라는 딸을 낳았다. 둘이 살아가던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희태로부터 무임은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무임은 딸 민아를 보호하기 위해 희태의 잔인한 폭력을 참아내며 살아가고 있다.

주먹을 날리는 대신 쇠젓가락을 라이터 불에 달궈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허벅지나 등허리, 팔뚝 같은 곳을 지졌다. 나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바로 옆방엔 민아가 있고, 욕실을 쓰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일층을 들락거리는 지완이 신경 쓰였다. 뭣보다 더는 이런 방식으로 희태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고통에 몸부림치는 어린 소녀였다. 십여 년 전 그날처럼 그렁그렁한 눈으로 목숨을 애원하길 바라는 거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의 뒤틀린 욕망을 외면했다. - < 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 중에서

그러던 어느날 희태 친구인 제문이 찾아오면서 그나마 유지되던 평화는 깨지기 시작한다. 평소에 무임을 도와주는 듯했던 제문은 희태가 숨긴 자신의 돈을 찾으러 연향으로 온 것이다. 그는 무임에게 협박을 가했고 결국 무임은 민아를 지키기 위해 최후의 선택을 한다. 

지완에게 민아를 맡긴 무임은 희태를 데리고 한 여관으로 데려가 그의 삶을 끝내고 민아의 삶을 살린다. 그리고 자신은 길었던 고통의 시간을 마감한다.

나는 보일러실 공구함에서 청테이프 한 토막을 앞니로 잘라내 희태에게 돌아왔다. 희태가 필사적으로 성한 팔과 다리를 움직여 이층으로 향한 계단을 올랐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가 그의 바지 뒤춤을 잡아당기자, 중심을 잃은 몸이 뒤로 발랑 나자빠지며 사지를 허우적거렸다. 나는 희태의 가슴에 올라앉아 발뒤꿈치로 팔뚝을 찍어 누르고 그의 입에 청테이프를 붙였다. 그러고는 숨을 고르며 몸을 일으켜 주방 한구석에 앞치마를 걸고 서 있는 원목 옷걸이를 끌고 왔다. 희태가 막힌 입으로 ‘읍, 읍’ 하며 두 눈을 홉떴다. 그의 성한 왼팔을 향해 옷걸이를 휘둘렀다. 첫 방은 어깨를 맞았고, 두 번째는 손목, 겨우 세 번 만에 그의 팔뚝이 각도를 흩뜨리며 풀썩 꺾였다. - < 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 중에서

한편 엄마 무임과 지완의 도움으로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 민아는 삶속에서 거의 황홀한 순간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레일 꼭대기에 올라서자 연향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모래알 같은 사람들이 운명과 운명을 부딪치며 서서히 마모되어가는 한 줌의 세상, 그 안에 우주신이 있고, 죽은 연인의 무덤이 있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과 시들어가는 청춘이 서로의 모난 자리를 쓰다듬고 매만지며 와글거렸다. 정상에 올라 잠시 머뭇거렸던 열차가 빠른 속도로 하강했다. 기묘한 화음을 이룬 세 가닥의 비명이 레일을 달린다. 울음이라 해도 좋고, 웃음이라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소리였다. 거의 황홀한 순간이다. - < 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 중에서

2.개인평점: 2.5 / 5

'거의 황홀한 순간'을 통해서 강지영작가를 처음만나게 되었다. 이전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스타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애매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무임의 인생은 그렇다치고 하임은 왜 등장한 거지? 라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의 흐름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이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무임'과 '하임'을 비참한 인생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두 모델이라고 말한다. 

나는 『거의 황홀한 순간』의 무영과 하임을 상품이 아닌 샘플로 보여주고 싶다. 독자들이 두 여성의 선택을 지지할 수도 혹은 반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삶이 우리에게서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 < 거의 황홀한 순간, 강지영 > 중에서

무임과 민아는 지금도 볼 수 있는 가정폭력의 모습임은 알겠다. 그렇지만 하임은 어떤 것의 모델이었을까? 엄마의 스캔들에 괴로워하는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등장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나의 이해부족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 가장 답답한 것은 무임의 인생이다.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무임의 인생의 우리의 삶과 그리 동떨어져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뉴스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학대를 참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쉬운 것은 무임의 비참한 인생이 그렇게 비참하게 끝을 맺도록 해야 했나 하는 부분이다. 너무 뻔한 결과인 것 같다. 이게 현실일지라도 무임이 지완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민아와 함께 계획된대로 삶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무언가 애매한 부분이 있었지만 시간을 보내기에는 좋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3.작가소개

파주에서 태어난 강지영 작가는 첫소설인 '굿바이 파라다이스' 발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이후 '개들이 식사할 시간', '신문물검역소', '엘자의 하인' 등의 작품을 출간했다. 특정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최근 '킬러들의 쇼핑몰'의 원작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에게 더 잘 알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