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한강) - 애도와 위로가 공존하는 색

한강 작가의 '흰'은 2018년 출간된 작품으로 작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로 한강작가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생긴터라 책을 하나씩 찾아보며 읽고 있다. 그런데 '흰'은 작가의 다른 책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흰

1.내용소개

한강 작가의 '흰'은 명확한 명확한 줄거리가 있기 보다는 '흰'생깔이 주는 이미지들과 느낌,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단편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작가는 낯선땅으로 거처를 옮긴 후에 그곳에서 '흰'색을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짧은 것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써내려간다. 

단편적인 글 속에는 저자의 사적인 경험들이 투영된 이야기들이 있다. 특히 짧은 생을 마감한 언니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게 투영되며, 여기에서 흰색은 죽음과 순수, 그리고 부재와 위로를 상징하는 매개체로서 작용한다. 

작가는 책을 통해 개인이 경험한 상실과 부재를 직면하며, 언어로는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을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한강 작가의 '흰'은 이런 의미에서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사라진 존재들 모두를 위한 애도이자, 여전히 남아있는 이들을 위한 위로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2.밑줄모음

엉망으로 넘어졌다가 얼어서 곱은 손으로 땅을 짚고 일어서던 사람이, 여태 인생을 낭비해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씨팔 그 끔찍하게 고독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게 뭔가, 대체 이게 뭔가 생각할 때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p.55)

성년이 되어 어머니를 떠난 그는 결벽적인 만큼 윤리적인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게 되는데, 선택의 순간마다 어째서인지 히말라야의 설산에 눈이 내리는 압도적인 풍경이 그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는 누구도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정을 하고, 그 결과 끊임없이 고초를 겪는다. 부패가 만연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혼자서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며 나중에는 린치까지 당한다. 결국 모함에 빠져 직장에서 쫓겨난 뒤 혼자 돌아온 방에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아득한 설산의 계곡과 봉우리들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가 갈 수 없는 곳, 얼어 붙은 아버지의 몸이 숨겨진,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얼음의 땅(pp.56-57)

완전히 늙어서...한 올도 남김없이 머리털이 하얗게 세었을 때, 그때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꼭 그때, 젊음도 육체도 없이 열망할 시간이 더 남지 않았을 때. 만남 다음으로는 단 하나, 몸을 잃음으로써 완전해질 결별만 남아있을때(p.90)

어떤 의미에서 '흰'은 노랑이나 검정, 빨강이나 파랑 옆에 놓이는 색깔이 아니다. 노랑부터 파랑까지의 색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런 색들이 칠해질 수 있는 아직 칠해지지 않은, 어떤 텅 비어 있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새하얀 캔버스와도 같은, 캔버스의 '흰'은 그러므로 노랑, 검정, 빨강, 파랑과 같은 여타의 색깔과 대등한 색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색이고 다른 모든 색들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색이다.(p.169)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흰'책이었다. 그 책의 시작은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의 기억이어야 할 거라고, 그렇게 걷던 어느날 생각했다. 스물네 살의 어머니는 혼자서 갑작스럽게 아기를 낳았고, 그 여자 아이가 숨을 거두기까지 두 시간동안 '죽지마라. 제발'이라고 계속해서 속삭였다고 한다.(p.186)

3.개인느낌

한강 작가의 '흰'은 작가의 개인경험을 흰색을 나타내는 것들에 투영하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수필집이다. 짧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도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언니의 짧은 생을 애도하며 위로하는 감정을 담은 책이기 때문에 내용이나 느낌 역시 매우 개인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다. 작가는 과거에 폐허가 되었던 도시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는 색깔 흰. 흰 도화지 위에 어떤 그림이든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새 희망을 담을 수 있는 색깔 흰. 작가는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모든 자들에게 애도와 위로 그리고 새로운 시작의 소망을 주기 위해 본 책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읽는동안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좋은 책인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