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되었고, 추석연휴도 길었다. 그래서 많은 책들을 읽고싶었다. 하지만 부담되는 책은 좀 꺼려져서 찾아보다가 발견한 책이 서경희작가의 '김대리가 죽었대'였다. 재미있는 제목이라 눈에 끌린것 같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었다.
1.줄거리
시위대의 소리로 정신을 쏙빼놓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로 습한 기운에 불쾌감이 상승하던 어느날 아침. 회사에 김대리가 죽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김대리는 그동안 회사내에서 많은 선행을 베풀어 인기가 있었을 뿐 아니라 업무면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김대리의 위치가 이런만큼 김대리의 사망소식은 회사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특히 평소에 김대리의 도움을 받았던 동료들은 더 큰 혼란에 빠진다.
김대리의 죽음을 슬퍼만하고 있었던 동료들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팀을 꾸린다.
그런데 김대리의 죽음을 파헤치는 동안 오히려 김대리에 대한 않좋은 소문을 하나씩 듣게된다. 그리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김대리의 지병에 대한 사항도 알게 된다.
이렇게 소문이 쌓이고 쌓여 어느순간 김대리는 회사내에서 질이 나쁜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김대리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새로운 소문이 퍼지게 되고 조사팀은 이제 김대리가 아닌 새로운 소문을 파헤치기 위해 출동한다. 그리고 김대리는 잊혀진다.
2.밑줄들
대리가 말갛게 웃으며 오병수를 올려다봤다. 오병수는 깜짝 놀라서 김 대리를 쳐다보았다. 지금껏 이렇게 솔직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 오병수를 위로하기 바빴다. 가끔 농담의 소재로 삼기도 했지만 김 대리처럼 속내를 그대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병수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사람들이 위로해 주면 해 줄수록 마음은 더 씁쓸했다. 그들이 뒤에서 뭐라고 말할까 생각하면 고통은 배가 되었다. “김 대리,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 줘서. 김 대리는 내 맘 알아줄 줄 알았어요.” “제가 왜 오 대리님 마음을 모르겠어요.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사람들이 오 대리님을 비하하고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거 다 알아요. 교양 있는 사람의 다른 말이 뭔지 아세요?” “뭔데요?” “수박. 겉과 속이 다르잖아요.” - < 김 대리가 죽었대, 서경희 > 중에서
상담사는 사무실 전화번호를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114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라고 했다. 최민희는 전화를 끊고 114에 전화를 걸어 국민건강보험공단 사무실 전화번호를 물었다. 안내된 전화번호는 최민희가 아는 번호였다. 최민희는 114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1588’로 시작되는 번호 말고 ‘02’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다른 번호는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 후로도 지루하게 전화를 계속 걸었다. 최민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놈의 시스템은 기술이 진화할수록 고객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괴로워졌다. 고객의 돈으로 만든 시스템이 말이다. 아날로그가 그립기만 했다. 기계음을 더 듣다가는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도 - < 김 대리가 죽었대, 서경희 > 중에서
황미나는 오병수의 귀에 통화 내용을 속삭였다. 오병수는 최민희의 자리로 가 말을 전했다. 강지훈은 이희진의 옆에 와서 무슨 일이냐고 조용히 물어 왔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이렇게 발 없는 말은 또 천 리를 가리라. 불법 도박을 일삼던 김 대리는 과도한 빚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머지않아 김 대리의 이야기는 사내 전체를 돌았다. 직원들은 김 대리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겼다. 소문 전쟁이 조용히 회사를 뒤집어 놓았다. - < 김 대리가 죽었대, 서경희 > 중에서
대리님, 김 대리님 미스터리 궁금하지 않아요? 김 대리님은 의인일까요? 아니면 거짓말쟁이일까요?”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에요. 희진 씨, 저리 좀 비켜 줄래요? 내가 좀 바빠서요.” 강지훈이 벽시계를 보고 외쳤다. “카운트다운 들어갑니다.” - < 김 대리가 죽었대, 서경희 > 중에서
3.개인평점: 3 / 5
'김대리가 죽었대'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별 시덥잖은 내용을 책으로 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용이 진행되면서 단순한 흥미위주의 책이 아니라 오늘날의 현상을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짜뉴스가 어떻게 사람을 바보로 만들고 범죄자로 만드는가? 그 과정을 적당한 유머를 섞어서 작가는 잘 표현하고 있었다.
작가 역시 이러한 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싶다고 집필동기를 밝힌다.
'김 대리가 죽었대'는 여러 번 고쳐 썼다. 그만큼 고민이 많았다. 소설은 현시대를 담는 거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을 쓸 때 당대 어젠다를 주로 다뤘다. 루머와 가짜 뉴스가 판치고 이슈가 이슈를 덮는 현 세태를,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야기를 『김 대리가 죽었대』에 녹여 내고 싶었다. 김 대리는 누구인가. 실존하는 사람이 맞긴 한 것일까. 김 대리가 누구인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남기려 노력했다. 아마 각자 생각하는 김 대리는 모두 다르지 않을까. 내가 쓴 소설에는 해답이 없다. 해답이 있었다면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질문하는 소설을 꾸준히 쓰고 싶다. - < 김 대리가 죽었대, 서경희 > 중에서
책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또 다른 타깃을 보여주고 새로운 타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를 보여준다.
이전 타깃에 대한 미안함도 없이 또다른 타깃에 대한 가짜뉴스를 끝없이 생산할 준비를 하고 출동한다. 정말 오늘날의 SNS나 영상서비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잘표현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 씁쓸했던 부분은 사람은 어떤 사람의 아픔에 관심을 갖는척 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소문이 궁금한 것이라는 점이다.
가볍게 이 사회의 문제점을 잘 지적한 좋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