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브링리) - 소소한 삶에서 발견되는 삶의 의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했던 패트릭 브링리의 자전적 에세이를 최근 읽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단순한 직업 체험기를 넘어서는 책이라고 느꼈다. 그 안에서 저자가 느낀 삶의 성찰을 잘보여준다. 

나는메트로폴리탄의미술경비원

1.주요내용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했던 패트릭 브링리의 자전적 에세이를 최근 읽었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제목의 이 책은 단순한 직업 체험기를 넘어선다. 

 브링리는 10년간 미술관 곳곳을 지키며 마주한 일상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매일 같은 작품을 바라보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과정, 관람객들과의 짧지만 의미 있는 만남. 

그리고 거대한 미술관이라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예술 작품과의 장기적인 관계가 만들어내는 변화다. 

처음엔 그저 감시 대상이었던 작품들이 어느새 일상의 동반자가 되고, 나아가 삶의 위안과 성찰의 매개가 되는 과정을 저자는 조용히 보여준다. 

예술이 특별한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경비원이라는 독특한 시선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2.밑줄들

이 전시실을 다시 지나가다가 이렇게 포착된 예수의 삶 중에서 그가 설교를 하고 다니던 시기, 다시 말해'그의 말 자체가 주역이 되었던 시기'는 거의 모두 빠져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그의 설교인 산상수훈을 묘사한 그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교훈을 담은 우화를 그리려는 노력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옛 거장들은 예수의 삶에서 가장 반향이 큰 부분은 그의 인생이 시작된 지점과 끝난 지점이라고 확신했음이 틀림없다(pp.48-49)

그즈음 틈틈이 이집트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책으로 읽는 것과 예술품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번 느낀다.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진일보 시켰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p.87)

내가 갈팡질팡하며 설명하는 동안 남자는 그런 이야기에 굶주린 듯 귀를 기울인다. 보기 드문 사람이다. 아는 척을 하거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충돌을 반기는 사람. 나는 온종일 감탄했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남자의 개방적인 태도에 더 탄복한다. (p.146)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덤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숙제같다.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p.194)

예수의 몸은 태풍에 요동치는 배의 돛대에 못박힌 것처럼 보인다. 그를 중심으로 나머지 세상이 흔들리면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아면서도 부서진 몸은 뻔한 사실을 다시 상기시킨다.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 고통 속의 용기는 아름답다는 것, 상실은 사랑과 탄식을 자극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림의 이런 부분은 성스러운 기능을 수행해서 우리가 이미 밀접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불가해한 것에 가닿게 해준다.(p.319)

3.느낀점

패트릭 브링리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회고록을 다 읽고 나서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고 독자들의 열렬한 호평이 이어졌다는데, 나에게는 그 울림이 크지 않았다. 

 미술사 지식이 부족한 탓일까. 저자가 언급하는 수많은 작품들과 화가들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때마다 독서의 속도는 더뎌졌다. 

경비원의 반복적인 일상을 따라가는 서술 방식도 때로는 지루하게 다가왔다. 마치 텅 빈 전시실을 혼자 걷는 듯한 적막함이 책장을 넘기는 손을 무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완전히 무의미한 독서는 아니었다. 형의 죽음 이후 번잡한 출판업계를 떠나 미술관으로 도피한 저자가, 그 고요한 공간에서 서서히 치유되고 성장하는 모습은 나름의 울림이 있었다. 

특히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작품을 바라보며 발견하는 미세한 변화들, 그 속에서 찾아낸 삶의 리듬에 대한 성찰은 인상적이었다.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분명 보물 같은 책일 것이다.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나 미술관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다가올 테니까. 미술 문외한에게도 나름의 가치는 있다. 

적어도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니 말이다. 다만 나처럼 예술적 감수성이 무딘 독자라면 약간의 인내심을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