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무라카미 하루키) - 자신을 동정하지 말아라

아주 오래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다. 그후에 다시 한 번 '상실의 시대'로 제목이 바뀐 본 책을 다시한번 읽었다.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우연찮게 읽을 기회가 되어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노르웨이의 숲

1.줄거리

유일한 친구였던 기즈키가 사망한 후 와타나베는 그의 연인인 나오코와 사랑을 하게 된다. 같은 슬픔을 공유하는 가운데 두 사람은 깊은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그 후 나오코가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 나오코를 잃은 뒤 슬픔을 안고 살아가던 어느날 나오코가 요양병원에서 요양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온다. 

요양원에 찾아가서 다시 만난 나오코. 나오코의 회복을 기다리는 와타나베는 다른 한편으로는 미도리라는 새 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렇게 일상이 회복되는가 싶었던 어느날 요양원에서 알게된 레이코를 통해 나오코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된다. 

소식을 접한 와타나베는 오랜 방황을 하게 된다.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방황은 미도리를 통해 회복되고 서서히 아픔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2.느낀점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만난 건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당시 나는 일본 문학이라곤 거의 접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한 권의 책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하루키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어느새 일본 드라마까지 섭렵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최근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낸 『노르웨이의 숲』은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첫 독서 때 느꼈던 그 절절한 감정들이 이제는 조금 멀게 느껴졌달까.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서 청춘의 방황과 아픔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진 탓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와타나베와 미도리가 함께하는 순간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내 젊은 날의 어떤 순간들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루키의 후기 작품들에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되었다. 『1Q84』를 읽으며 느꼈던 당혹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초현실적 요소들이 과도하게 느껴졌고, 반복되는 패턴과 갑작스레 등장하는 성애 묘사들이 작위적으로 보였다.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으면서도 비슷한 불편함을 느낀 대목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건진 것이 있다면, 작품 속 한 구절이 던진 울림이다. "자기 자신을 동정하지 마라." 처음 읽었을 때도 마음에 새겼던 이 말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깨달았다. 

삶이 힘들 때, 우리는 종종 자신을 피해자로 만들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술에 기대거나 현실을 외면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려 한다. 

하지만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결국 현실의 문제는 현실 속에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책은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문득 서재 한편에 꽂혀 있는 하루키의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동안 외면했던 그의 작품들을 다시 펼쳐볼 시간이 온 것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의 나는 예전과는 또 다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밑줄들

여기의 제일 좋은 점은 다들 서로 돕는다는 거야. 모두 자기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아니까 서로 도우려는 거야 다른 곳은 그렇지 가 않아 애석하게도. 다른 곳에서는 의사는 어디까지나 의사, 환자는 어디까지나 환자일 뿐이지 . 환자는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의사는 환자를 돕는 거야 그렇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스스로 서로를 도와 우리는 서로의 거울인 셈이지 . 의사는 우리의 동료고. 우리 를 지켜 보다가 뭔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자연스럽게 다가와 도와주는데, 우리도 어떤 경우는 그들을 돕기도 해 왜냐하면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그들보다 더 뛰어나니까.(p.171)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리까지 이상해지려는 것 같았다. 의식이 완전히 풀어져 음지 식물의 뿌리처럼 축 늘어졌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고 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서는 안돼.어떻게든 해야 해. 그리고 나는 “자신을 동정하지 마"라는 나가사와의 말을 갑자기 떠올렸다 “자신을 동정하는 건 저속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이런, 나가사와 선배 당신 정말 대단하시네요(p.413)

그거 알아? 네가 오늘 나한테 엄청 심한 짓을 했다는 거. 내 헤어스타일이 바뀐 것도 몰랐지? 나는 애써 조금씩 머리를 길러 겨우 지난 주말에야 여자다운 스타일로 바뀌었다고. 너 눈치 못 챘지? 제법 귀엽게 되어서 오랜만에 만나 놀래 주려 했는데, 거들떠 보지도 않다니 , 너무한거 아냐? 혹시 너 내가 어떤 옷올 입었는지조차 기억 못 하는 거 아냐? 나도 여자라고. 아무리 생각이 많다고는 하지만 조금은 나를 바라봐 줘도 좋잖아 그냥 “그 머리, 예뻐.” 라고 한마디만 해줬으면 그 다음에야 무슨 짓을 하든 무슨 생각을 하든 널 용서 했을텐데 (p.421)

너도 나름대로 고집이 있으니까 잘해 나가리라 믿어, 한 가지 충고해도 될까, 내가." "해주세요." “자신을 동정하지 마 자신을 동정하는 건 저속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 "잘 기억해 둘게요. ”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그는 새로운 세계로, 나는 나의 수렁으로 돌아갔다.(p.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