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구의 증명'으로 유명한 최진영작가의 작품이다. 최진영작가는 이 소설이 이후 쓰게되는 다른 소설들을 쓸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고도 말한다. 제목만 보면 로맨스 소설 같지만 전혀 아니었던 던 책이었다.
1.줄거리
내가 진짜엄마를 찾는 이유는 진짜엄마가 그리워서도, 진짜엄마가 필요해서도 아니다. 진짜를 찾아내야 가짜를 가짜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세상이 온통 가짜뿐이라면, 가짜가 가짜임을 증명할 수가 없지 않나. 가짜가 진짜인 척해도 뭐라 할 말이 없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꼭 진짜를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서, 진짜인 척하는 가짜들을 진짜 가짜로 만들어버릴 테다 - <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 중에서
이상한 일이다. 내게 밥을 주고 잠잘 곳을 주는 사람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가난한 사람들일까. 세상엔 돈 많은 사람들이 없나. 아니, 그런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나.
어제 내가 지나온 거리에도 돈 냄새를 풍기는, 제법 잘사는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 <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 중에서
어느덧 어린소녀에서 사춘기 소녀로 성장한 소녀는 자기와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늘 불안함 속에서 소녀는 시간을 보낸다.
유미와 나리랑 있으면 늘 아슬아슬하고 조급하면서도 즐거울 땐 아무 걱정 없이 웃고 짜증 날 땐 세상을 다 부숴버릴 듯 화를 낼 수 있었다. 하루하루는 쏜살같이 흘러가는데 돌아보면 늘 제자리고 무심결에 손을 베듯 몸과 마음에 상처가 났다.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고 낯모르는 애들과 말을 섞고 어른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맨살을 다 드러내며 그렇게 쳐다보면 뭐 어쩔 거냐고, 이건 내 몸 내 정신 오직 나만의 것이니까 씨발, 관심 끄라고 대거리를 하면서도 깡마른 고양이처럼 눈빛은 언제나 불안하게 흔들렸다.
깨달음과 후회는 언제나 뒤늦게 오니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결국 혼자 남아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고 내 상처를 내 혀로 핥으며, 굶주림과 공허함에서 허덕이게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 <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 중에서
어느날 소녀는 함께 하던 친구가 아빠의 학대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소녀는 그 아빠를 찾아가 복수하려 한다.
2.책속밑줄
백곰은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고 똑똑한 줄 안다. 그리고 자기보다 돈 많고 힘센 사람이 하는 일은 뭐든 다 옳다고 했다. 왜냐면 자기가 그런 사람이랑 동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그러면서 자기가 그렇게 무시하는 언니가 사다 주는 옷은 왜 입고 밥은 왜 먹나 몰라, 없어 보이게. - <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 중에서
차라리 불행할 것이다. 대장과 달수 삼촌은 내게 그 이치를 가르쳐줬다. 불행을 주긴 쉽지만 웃음을 주긴 어렵다는 걸. 우리가 웃음을 주려고 하면 사람들은 팔짱을 낀 채 ‘어디 한번 해보시지’라는 눈빛을 마구 뿜어냈다.사랑하던 사람이 도망가고, 돈을 다 잃고, 마음속엔 활활 불이 타올라도 우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웃어야 했다. 그럼 우리를 보는 사람도 웃었다. 웃다가도 어쩔 수 없이 울면, 우리를 보는 사람도 울었다. 그 눈물에, 표정에, 코를 훌쩍이는 소리에 위안을 받았다.그건 동정이 아니다. 같은 마음이다. 그렇게 울고 웃는 사이 불행은 평범해졌다. 평범해진 불행엔 힘이 없다. 그냥 그까짓 것이 된다. - <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 중에서
아주 사소한 것들만 변할 뿐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틀과 원리는 어디든 비슷해서, 맞는 사람은 늘 맞고 으스대는 사람은 늘 으스대며 때리는 자는 늘 때리는 자다. 그것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알 순 없었지만,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것을, 그런 이치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그들의 뜻대로 굴러간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반쯤 헐린 나의 공간에서 지켜보았다. - <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 중에서
불타는 집을 보고 사람들은 미친 듯 울며 용역에게 매달렸다. 용역은 그들을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용역에게 주먹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옆엔 친절한 경찰이 있어서, 주먹이 용역에게 닿기도 전에 그 사람을 잡아갔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대로 될 거라고, 목소리가 말했었지. 이런 것이 정말 주님의 뜻이라면 천국은 지옥보다 더 지독한 곳일 거다. - <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 중에서
3.느낀점
'당신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제목만 봐서는 사춘기 시절 마음을 설레게 하는 로맨스 소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내용은 설레임과는 관계 없는 내용이다.
설레임보다는 불안, 초조 , 막막함 등을 가슴에 담아두고 사는 한 소녀의 진짜부모 찾기 프로젝트이다. 소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가짜임을 증명해야 했다.
왜냐하면 진짜 부모란 자신을 학대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가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면
절망도 그런 절망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부모를 찾아 저 가짜 부모들의 정체를 세상에 드러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소녀는 부모를 찾아다니며 여러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진짜 부모가 아닌 진짜 세상을 만난다.
그속에서 소녀가 진짜 바란 것은 어쩌면 진짜 부모가 아닌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진짜 사랑이 아니었을까? 작가도 사랑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녀를 쓸 당시에 소녀의 나이를 몇 살 정도로 정하고 소설을 썼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 역시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럼 뭐가 중요했나. 소녀에게 중요한 것이 내게도 중요했다. 사랑. 당신이 내 눈을 보며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 순간 - <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 중에서
소녀가 경험한 세상은 따뜻하지는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만난 일부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보호와 공감을 잠시나마 느낀다.
그랬기에 소녀는 그것을 마지막에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이 그렇다고 원망 불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소녀는 배우게 된 것이다.
어쩌면 한번쯤은 우리옆으로 사랑받지 못한 이러한 소년소녀들이 스쳐갔을 것이다. 대부분 따뜻한 시선보다는 혀를 찼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 소년소녀는 관심과 도움 그리고 사랑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느끼고 반성하게 되었던 책이다. 좋은 책이다.
세상은 어째서 이따위인가’라는 질문만을 단검처럼 손에 쥐고 달려갈 수 있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이따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방패처럼 손에 쥐고 느리게 한 걸음 한 걸음……
오래 멈추었다가 다시 한 걸음 나아가거나 물러서는 시절을 통과하고 있다. 10여 년 전 내가 쓴 문장이 지금의 나를 공격하는 순간도 있다 - <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