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줄거리
한때 원도는 화목한 가정과 안정된 직장으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런데 원도는 현재 모든 것을 잃은 채 여관을 전전하며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을 살고 있다.
원도는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원도는 자신의 과거를 더듬으며 자신이 이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결정적인 한 순간을 찾기위해 애를 쓴다.
어렸을 적 물한 컵을 마시고 자신앞에서 죽어버린 죽은 아버지때문인가? 자신에게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휘둘렀던 살아있는 새아버지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자신에게 쏟을 사랑을 보육원에만 쏟고 돌아와서 눈물만 흘리는 어머니 때문일까? 원도에게 다른 남자가 되라고 말하던 유경 때문이었나?
생각끝에 원도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만든 단 한명의 사람을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는 장민석으로 어렸을적에 부모님이 집으로 데려온 아이였다.
그 아이가 등장하면서 원도는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겼고, 넓디넓었던 자신의 방한켠을 빼았겼고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는 애인의 사랑도 빼앗겼다.
그렇기 때문에 장민석이 원도의 인생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할수밖에 없는 것이다.
받아야 할 시기에 받지 못했던 사랑의 구멍을 매우기위해 노력했던 원도.
그러나 끝끝내 채우지 못한 구멍을 다른 것으로 채우기 위해 불법을 저질렀을 때 원도는 지금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원도는 그 순간 순간마다 '나는 왜 죽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 대답은 끝내 듣지 못한다.
사는 동안, 잊을 만하면 튀어나와 원도를 궁지로 몰아넣던 질문. 때론 가소롭고, 때론 무섭고, 때론 고통스럽던 질문. 글자나 소리로 이루어진 대답이 아닌, 원도 자체를 요구하던 그것. 왜 사는가. 이것은 원도의 질문이 아니다. 왜 죽지 않았는가. 이것이다- < 원도, 최진영 > 중에서
2.밑줄모음
아내가 있었고, 딸이 있었다. 잊을 수 없는 모욕과 경멸, 쉽게 잊고 만 실패와 감동, 주체할 수 없는 원망과 분노, 비열한 순간과 절망의 날들. 그리고 희망. 꿈. 하고 싶고 갖고 싶고 이루고 싶었던 것들. 하지만 그때의 경멸이 정말 경멸이었는지, 감동이 정말 감동이었는지, 절망이, 희망이 정말 그것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아내가 무엇인지, 동료가 뭐고 선생이 무언지,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결국 다 한통속이고, 진흙처럼 엉긴 덩어리일 뿐이다. 그 안에서 각자의 자리를 바꾸더라도 크게 다를 바 없는, 결국 나를 배신하거나 기만하거나 파멸시키기 위해, 아니 꼭 그것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는 자들의 덩어리라는, 그런 느낌뿐이다. 괴롭다. 그 무엇도 명확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존재할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이. 내 인생이 뒤틀려버린 단 한 순간이. 알아야 한다. 그때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 원도, 최진영 > 중에서
하지만 기억에 없다. 어머니는 늘 바빴다. 부모 없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빴고, 죽어가는 노인들을 씻기고 밥을 먹이느라 바빴고, 바쁘지 않을 때는 요한복음을 읽거나 청소를 하거나 우느라 바빴다. 어머니는 드라마를 보며 울었다. 창밖을 보며 울었다. 나사로가 부활하는 부분을 읽고 또 읽으며 울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래를 들으며 커피를 마셨고, 그러다 느닷없이 울었다.- < 원도, 최진영 > 중에서
장민석은 무엇이든 원도가 먼저 선택하도록 했다. 어머니와 산 아버지는 그것을 어른스럽고 의젓한 장민석의 양보와 배려라고 이해했다. 어떻게 양보인가. 모두가 원래 내 것이었다. 장민석은 양보를 하려야 할 수 없다고, 원도는 생각했다. 억울했다. 자기 선택을 신뢰할 수 없었다. 언제나 장민석의 것이 더 좋아 보였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볼품없고 비천한 것이라도, 그런 입장과 역할이라도, 장민석이 가지는 순간 그것은 무엇보다 좋고 탐나는 것이 되었다. 장민석이 나타나기 전까지 원도는 그저 원도였다 - < 원도, 최진영 > 중에서
유경이 바라는 건 남자다운 자기가 아니라 자기가 아닌 다른 남자라는 것에 대해서. 유경은 원도에게 이것저것을 하지 말라거나 이러저러한 것을 하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나는 오빠가 좀 더 세심했으면 좋겠어. 오빠도 운동 좀 해. 만나서 뭘 할지 오빠가 좀 정했으면 좋겠어...(중략)... 이해한다는 말로, 몇 대 맞을래라는 말로 원도의 오류와 책임을 지적하면서 원도 아닌 다른 존재를 요구하는 선생이나 부모처럼, 유경은 사랑이라는 말을 방패 삼아 있는 그대로의 원도를 부정했다. - < 원도, 최진영 > 중에서
원도에게 어머니는 분명 존재했지만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텅 빈 그곳을 온갖 상상과 환상으로 채우다 어느 순간 잊었다. 잊고 살다 가끔 절감했다. 절감할 때마다 사랑하고 싶었다.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아니다. 사랑받고 싶었다.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 원도, 최진영 > 중에서
3.느낀점
어쨌든 나에겐 사랑이 필요하다는 호소. 그것을 전하려고 계속 소설을 쓰는 것만 같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가’라는 문장은 ‘이렇게 계속 사랑해도 되는가’라는 문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핍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넘쳐흘렀다. 언제나 흐르고 있었다. 이 소설은 어쩌면 흐르는 그것을 잠시라도 막아서 내 안에 가두어보자는 안간힘이었는지도. 이 소설을 들여다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그때 원도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다음 질문으로 건너갈 수 있었음을. - < 원도, 최진영 > 중에서
'원도'는 분위기가 암울하다. 최진영 작가의 책을 읽어보면 분위기가 늘 암울하다. 하지만 그 암울함속에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최진영작가는 현실의 이야기에 MSG를 뿌리지 않는 특징을 가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최진영작가의 책을 읽으면 현실적으로 많이 와 닿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원도를 읽으면서 어렸을 적 사랑을 받아야할 시기에 받지 못한 사랑의 구멍은 오래도록 남는다는 생각을 했다.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해 생긴 결핍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그 사람은 언제나 갈증속에 살 것이다. 그러다가 왜곡된 욕구가 생길수도 있고 그러면 원치 않는 삶으로 나아갈 위험성이 높아진다.
원도가 그런 인물처럼 보였다.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각 시기에는 받아야할 사랑이 있다. 그 사랑으로 온전히 자란 아이는 가득 채워진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원도와 같은 구멍난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사회는 불안정할 것으로 보인다. 가족 뿐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공동체간에 서로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