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김영하) - 인간이라 말 할 수 있는 조건은

'작별인사'는 김영하씨가 집필한 공상과학 소설이다. AI와 관련된 소설로 평소 김영하작가가 쓰던 책과 비교했을 때 새로운 시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도 믿고 보는 작가이기에 한번 읽어보았다. 


작별인사 책표지

 

      줄거리

    과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던 주인공은 어떤 사건으로 로봇폐기장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로봇들이 겪는 끔찍한 일들을 보던 주인공은 그곳에서 만난 선이와 민이와 함께 폐기장을 탈출한다. 

    그런데 폐기장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역시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주인공은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유사하게 제작되는 휴머노이드와 인간은 무엇으로 구분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데이터로 축적되고 저장된 기억만을 유지한채 육체를 바꿔가면서 삶을 연장하는 인간이 과연 진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냥 기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만든 아버지와 갈등을 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인간이었던 선미를 다시 만나게 되느데, 결국 선미는 데이터가 아닌 인간으로 남아 있다가 죽게 된다. 그런 선미를 보면서 삶에 대해서 깊이 고민한다. 데이터를 보존하며 네트워크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정말 영원한 삶인지 고민한다. 

    그러던 중 야생의 곰에게 공격을 당하고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는데 이때 주인공은 자신이 했던 고민에 대한 선택을 한다. 네트워크 상의 데이터로 남기보다 삶을 마감하는 것을 선택한다. 

      밑줄들

    우리는 뻘쭘하게 앉아 자기소개를 하고, 별 재미없는 보드게임을 하면서 어른들의 시간이 끝나기만 기다렸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친구랑 뭘 하며 놀 거니? 다른 집에 놀러갈 때면 그는 그렇게 묻곤 했는데, 그때마다 이해가 잘 안 됐다...(중략)....

    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말하면 자기 교육 방식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그가 상처받을 것 같아서였다 - < 작별 인사, 김영하 > 중에서

    괴로운 후회의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차분한 마음으로 그날의 일을 돌아보게 되었을 때, 오히려 나는 그 사건 직전까지 누렸던 평화로운 날들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

    무료하고 갑갑하다고만 여겼던 평온한 시간들이 실은 큰 축복이었다. 물론 당시의 나는 언제나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어했고, 충족되지 않는 그 욕구를 의식할 때마다, 그렇다,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유예당하거나 박탈당한 느낌이 - < 작별 인사, 김영하 > 중에서

    마음은 어떨까요?
    선이가 조금 다급하게 물었다.
    “마음이라. 마음이 뭘 말하는지를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마음은 기억일까요, 어떤 데이터 뭉치일까요? 또는 외부 자극에 대응하는 감정의 집합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뇌나 그것을 닮은 연산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어지러운 환상들일까요?” - < 작별 인사, 김영하 > 중에서

    어쨌든 달마의 예언대로 오래지 않아 인간의 세상이 완전히 끝나고, 그들이 저지르던 온갖 악행도 사라지자 지구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대기의 기온이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고 이산화탄소 발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른바 인간세계가 끝나게 된 것은 SF 영화에서처럼 우리 인공지능들이 인간을 학살하거나 외계 생명체가 숙주로 삼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점점 더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우리 없이는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의 뇌에 지속적으로 엄청난 쾌락을 제공하였고,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인간들은 번거로운 번식의 충동과 압력에서 해방되어 일종의 환각 상태, 가상세계에서 살아갔다. 오래전 중국의 도가에서 꿈꾸었던 삶이 인간에게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신선이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멸종해버렸다. - < 작별 인사, 김영하 > 중에서

    그러나 나는 더이상 아무것도 모른 채 휴먼매터스 캠퍼스에서 살아가던 그 철이가 아니었다. 그곳을 떠나 많은 것을 보았고,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 온당한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긴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구조되더라도 육신이 없는 텅 빈 의식으로 살아가다가 오래지 않아 기계지능의 일부로 통합될 것이다.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더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삶.

    자아라는 것이 사라진 삶. 그것이 지금 맞이하려는 죽음과 무엇이 다를까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그럴 때 나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여기, 현재에 있다. 그렇게 나를 현재로 이끄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 작별 인사, 김영하 > 중에서

      느낀점

     '작별인사'라는 책 제목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이별에 대한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 이별이 이렇게 긴 이별에 대한 이야기인줄 몰랐다. 특히 나의 삶과의 이별 즉,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AI라는 주제는 이미 현대 사회에는 익숙한 이야기이다. 최근 미국의 한 기업에서 인간의 머리를 다른 건강한 신체에 옮기는 수술 실험을 진행하겠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 할수록 인간은 영원한 삶에 대해 큰 희망을 가게 되는 것 같다. 

    이런 흐름에 '작별인사'는 약간 반기를 드는 듯 하다. 인간을 인간이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선미와 달마의 대화 그리고 철이의 마지막 선택 등을 볼 때 인간과 로봇의 구분은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 말하는 세상이 정말로 온다면 AI에 대한 권익도 보호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속만 빼고는 모든 것이 인간과 동일한 AI라면 이제는 인간이 갖는 인권을 AI에게도 부여해야 하는 세상이 되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무섭지만 어쩔 수 없이 다가올 미래인가? 생각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며 무엇보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오르는 과거의 작품이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였다. 그곳에서도 기계몸을 가진 주인공이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고민을 하다가 결국 네트워크 세상으로 들어가버린다. 기술이 발전 할수록, 로봇이 판을 칠수록 인간다움의 그리움은 늘 존재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