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엘레강스는 세밀화가로서 술탄의 지시를 받은 에니시테의 명령에 따라 그림에 금박을 칠하던 사람이었다. 어느날 엘레강스는 자신이 살해 당해서 한 우물에 버려졌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와 그를 죽인 자밖에 알지 못한다.
엘레강스에게 그림을 지시했던 에니시테에게는 지역 최고의 미인인 딸 세큐레가 있었다. 세큐레는 결혼했지만 남편이 전쟁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미망인처럼 되었다. 이런 세큐레를 카라는 오랜시간 사랑하고 있었다.
에니시테의 집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던 카라는 세큐레를 사랑했지만 이룰 수 없었다. 몇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온 카라는 세큐레에 대한 사랑이 다시 불붙음을 느낀다. 세큐레 역시 그때는 안되었지만 남편이 없는 지금 사랑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는다.
그러던 어느날 엘레강스를 죽인 살인자는 그림지시를 내린 에니시테를 찾아왔고 에니시테에게 작업하고 있는 그림책을 보여달라고 한다. 오랜 지인이었기에 의심하지 않았던 에니시테는 그림을 보여주고 그림을 본 살인자는 곧 에니시테도 살해한다.
에니시테가 죽은 후 세큐레는 카라와 결혼을 하게된다. 그리고 에니시테에게 작업을 지시했던 술탄은 장인 오스만과 카라에게 엘레강스와 에니시테를 죽인 범인을 사흘안에 찾아오라고 명령한다.
술탄의 금고에서 그림을 조사하던 오스만과 카라는 독특한 코 모양을 하고 있는 말그림을 발견하게 되고 그 그림을 그린 자가 곧 엘레강스와 에니시테를 죽인 범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장인 오스만은 그 그림을 그린 자가 오랜 제자임을 알게 된다.
범인을 특정한 카라는 오스만의 세 제자 황새, 나비, 올리브를 각각 찾아가고 세 명중 한 명이 범인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그 범인을 잡으려던 찰나 뜻밖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고 범인은 도망간다.
하지만 도망가던 길에 그만 살해당하고 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카라는 세큐레와 함께 행복한 여생을 보내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밑줄들
“그러니까 자네가 하고 있는 일이 뭔지 내가 안다는 사실을 인정 한다는 말이로군.” 그렇다네, 인정하네. ” 나는 속수무책으로 거짓말을 했다. 그는 순진하게 웃었다. ‘자네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 엄청난 죄라는 것을 모르겠나? 그건 누구도 감히 시도해선 안 되는 무신론자의 행동일세 . 자네는 지옥의 화염에 불타게 될 거야. 절대로 끝나지 않을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게 되겠지. 게다가 자네는 날 공범자로 만들었어.”(1권 p.45)
편지라는 건 쓰여 있는 글자만이 전부가 아니에요. 편지는 마치 책처럼, 냄새를맡거나 만져서 읽을수도 있는 거랍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 읽어 봐, 편지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라고 하지요. 바보들도 자, 읽어 봐, 그가 뭐라고 썼는지.”라고 해요. 그런데 편지를 읽는다는 것은 글자뿐만 아나라 그 속에 숨은 뜻까지 읽는 거 예요. 자, 지금부터 들어 보세요, 셰큐레가펀지에서 사실은 뭐라고 했는지.(1권 p.80)
에니시테가 나를 의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사실에 쾌감을느끼고 힘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면 그가 두려움 때문에라도 그 마지막 그림을 꺼내서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다...(중략)...“그 비열한 놈을 누가 죽였는지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그를 죽인 사람은 선한 일을 한 셈이 아닙니까?” 그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선하고 도덕적이라고 믿는 자들은 상대의 태도에서 뭔가 꺼림칙한 것을 발견하면 이렇게 상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대를고발해서 고문관이나 사형 집행인에게 넘겨야 좋을지를 심사 숙고 하기 때문이다...(중략),,,바로 그때, 그 자만심 가득한 노인의 머리에 온 힘을 다해 물감병을 내리치라고 날 부추긴 것은 물론 악마였다. 나는 악마의 말에 순종 하지 않고, 어리석은희망을품고서 이렇게 말했다. “엘레강스는 제가 죽였습니다.”(1권 pp.315-318/살인자)
‘색의 의미는 그것이 우리 앞에 있다는 뜻이며 , 그것을 우리가 본다는 것을 뜻하지 . 보이지 않는 사람에겐 빨강을 설명할 수 없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 이단자, 불신자들은 신을 부정하고자 할 때 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네. ” “그러나 신은 보는 사람에게는 보이네 그래서 코란에는 보는 사람과 보지 않는 사람이 절대로 같지 않다고 쓰여 있지.”(1권/빨강 p.362)
또 하나 내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악과 죄의 원천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의 부추김이나 속임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 욕정, 부족한 신념 , 저질스러움 그리고 대부분은 아둔함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나에게 모든 사악한것들에 대한 면책권을 주고자 하는 신비주의자들의 노력이 쓸데없는 일인 것처럼, 모든 악이 나로부터 나온다는 생각 역시 코란에 위배됩니다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썩은 사과를 파는 과일 장수들, 거짓말하는 아이들, 아양 떠는 아첨꾼들, 추잡한 몽상에 잠기는 늙다리들, 딸딸이를 치는 소년들은 내가 부추겨서 그러는게 아닙니다.(2권/악마 p.161)
웃지 마십시오 사상이란 그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밀화가가 무엇을 그렸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그린 방식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추상적인 개념이어야만 합니다.(2권/악마 p.165)
“올리브라네.” 그가 너무나 쉽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놀랄 새도 없었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가 조용히 말했다.“하지만 자네의 에니시테도, 가련한 엘레강스도 올리브가 죽이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하네. 이 말을 올리브가 그렸다고 생각한 것은 그가 옛 장인들의 화법을 가장 잘 고수하고 있으며 , 헤라트 전설들과 화풍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그리고 그의 스승들의 계보가 사마르칸트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네(2권/오스만 p.237)
눈물이 곧 멈출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제어할 수 가 없었다.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울면 울수록 그들이 형제애, 파멸감, 그리고 슬픔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다. 술탄의 화원에서는 이제 유럽 화풍의 그림 이 그려질 것이며 평생을 바친 우리의 화풍과 책은 천천히 잊힐 것이다. 에르주룸파들이 우리를 몰아 세워 학대하거나 술탄의 고문관들이 우리를 불구로 만들 것이다.(2권/올리브 p.321)
새로운 소식을 가져올 때의 경쾌하고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에스테르가 부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얼마나 흥분 했던지 나를 껴안고 입맞춤을 하기도 전에 말을 늘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올리브의 머리가 화원 문 앞에서, 그의 죄를 증명하는그림들과 함께 발견되었다는 거예요. 그는 인도로 도망 치려다가 마지막으로 화원에 들렀다고 합니다. 증인들도 있대요. 그곳에서 올리브를 본 하산이 빨간 검으로 그를 단칼에 잘라버렸답니다.(2권 p.357)
느낀점
'내이름은 빨강' 이렇게 제목만 보아서는 그냥 동화책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안에는 튀르키예(구 터키)의 역사적 아픔이 담긴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한 사람이 살해당하고 살해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갈등을 겪는 화가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튀르키예는 동서양이 맞닿고 있는 대륙에 위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적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서양의 영향을 안받을 수 없는 상황에 있다. '내 이름은 빨강'은 이런 지리적 위치에 놓여있던 튀르키예에 새로운 서양화풍이 들어오면서 생겨나는 문화적 갈등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밀 화가들은 에니시테를 통해 점차 서양 미술의 영향을 받게되고, 이것은 그들 사이에 커다란 갈등과 불안을 가져온다 전통적인 화풍을 고수하는 것과 새로운화풍을 받아들이는 것, 신성 모독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사이의 격렬한 논쟁은 결국 세밀화가들의 희생을 불러오고, 서양 화풍의 적극적인 도입을 지지 했던 에니시테조차 살해 당함으로써 , 이야기는 점점 더 피투성이로 변해 간다. 술탄은 이러한 살인 사건이 자신을 향한 도전이라 여기고 궁정 화원장인 오스만과 에니시테의 조카인 카라에게 사흘 안에 살인범 을 찾아내도록 명한다.(2권/해설 p.378)
술탄이 에니시테에게 지시한 그림책은 서양화풍으로 그리는 작업이었다. 에니시테가 이것을 그리기 위해 작업을 시킨 세밀화가가 서양화풍에 물들어가고 있는 에니시테와 엘레강스를 처단해야 한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신념이 강하면 그것은 곧 행동이 된다. 책 내용중 악마가 말하는 부분에서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은 자신의 욕망과 욕구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신념 역시 그에 따른 극단적 행동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 욕망은 필요하다. 욕망과 욕심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의 욕망이 필요한 것이다. 신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공동체는 늘 '내이름은 빨강'에서 말하고 있는 갈등을 경험한다.
신세대와 구세대, MZ세대와 꼰대세대, 윤리와 실용 등등 항상 부딫히고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발전하게 되지만 그러면서 잃어가게 되기도 한다. '내이름은 빨강'을 읽으면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올리브가 하는 이야기가 공감이 가기는 했다.
중요한 것은 온고지신이며 역지사지라고 생각한다.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새것을 이해할 때 올바른 발전이 이루어 질것이며 두 부딫힘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할 때 폭력적이지 않게 인계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책을 읽으면서 신구의 조화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만, 책에 너무 많은 화자가 등장하기 때문에 순탄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관계로 선뜻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읽은 책중에 하나였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었을 때 상당히 철학적인 부분이 있는 책임을 알게 되었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