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는 구병모씨의 대표작으로 최근에 뮤지컬로 재탄생되기도 했다. 구병모 작가는 '아가미'라는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참 괜찮은 작가라 생각해서 '파과'를 찾아 읽어보았다. 예상한대로 좋은 책이었다.
1.줄거리
조각은 '손톱'이라 불리며 40년간 청부살인 업계에서 전설로 여겨지는 여성 킬러다. 하지만 세월의 힘은 어쩔 수 없어서 어느새 업계에서도 퇴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문제는 젊은 시기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켜야 할 것은 절대로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던 조각이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키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 참이었다.
뿐만 아니라 킬러였을 때 느끼지 못햇던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람의 온기가 조각에게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이런 조각에게 어린 남자 킬러가 시비를 걸어온다.
투우라 불리는 이 남성은 사사건건 조각에게 시비다. 그러던 어느날 조각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의사의 가족을 투우가 위협한다. 조각은 의사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투우와 마지막일지 모르는 대결을 하게 된다.
투우와의 대결이 끝나고 그제서야 조각은 투우가 자신이 죽였던 한 남성의 아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조각은 업계를 떠나 조용한 삶을 이어가려 한다.
2.밑줄긋기
그녀가 심란한 이유는 팔이 붙잡힌 순간 곧바로 소매를 뿌리치려고 했으나 투우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어서인데, 자신의 신체적 노화가 일상의 노력을 추월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초조함이다. 베일 철을 지난 이삭은 고스러지게 마련이고 젊은 남자와 나이 든 여자의 당연한 힘 차이라는 건 이 상황에 고려 대상이 아니며 지금은 업자 대 업자일 따름인데 조각으로선 사소하고 순간적인 장면이라 한들 이 코흘리개한테 졌다는 게 핵심이다.상대방에 대한감정적 반웅보다부실한자신의 폼상태에 대한실망 때문에 그녀는 투우가 천천히 힘을 풀고 소매를 놓았음에도 그 자리를 떠날 생각을 미처 못 하고 다시금 소파에주저앉는다.(p.46)
무용은 촉촉한 코를 주인의 턱에 비비기 시작한다. 평소라면 잘 하지 않는 일인데 녀석은 가끔씩 주인이 우울한 주제로 혼잣말을 넋두리처럼 하고 있을 때 이런 애교를 부리곤 한다. 말뜻은 몰라도 어조로 아는 듯하다. 무용의 등을 계속 쓸어 내리며, 어느덧 무릎이 저려오는 걸 느끼며 그녀는 말을 잇는다. “꼭 개라서 그런 게 아니다. 사람한테라고 다를 바 없지, 늙은이는 온전한 정신으로 여생을 살 수 없을 거라는 늙은이는 질병에 잘 옮고 또 잘 옮기고 다닌다는...늙어서 누구도 맡아주지 않는다는. 다 사람한테 하듯이 그러는 거야. 하지만 내가 너를 많이 보듬어주지는 못해도 네가 그런 지경에 놓이는 건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pp.136-137)
무언가를 하기로 생각하고 있다면, 설령 그것이 가벼운 인사일지라도, 언제나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요즘 같아서는 더욱 그렇다. 돌아서면 곧바로 자기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잊고 마는 일상이니까. 그녀는 무용의 머리를 서너 번 쓸어내리며 한 음절씩 확고하게 말한다. “다녀, 온다.” 숨이 붙어 있는 한은 다녀-올 것이다. 손발이 움직이는 한은, 언젠가 이 녀석이 기억에서 지워지거나 그 존재를 인식조차 할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그녀는 현관문을 닫는다.(pp.168-169)
류를가끔 떠올렸고 그가 생전에 주의를 준 사항들에 자주 이끌렸지만, 제 몸처럼 부리던 연장으로 인해 손바닥에 잡힌 굳은 살과도 같은 감각 외에는, 류를 생각하면서 온몸이 뻐근하게 달뜨고 아파오는 일이 더 이상 없었다. 그녀는,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p.255)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 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 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 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pp.332-333)
3.느낀점
'파과'라는 제목부터가 특이했다. 처음에는 파과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작가의 말을 듣고 파과가 무엇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냉장고 문을 열어 놓은 채 그 자리에 한동안 가만히 앉아선 나는 이렇게 된다(그것도 인생에 급 변수가 없다는 전제 하에). 아니 그런 당연한 사실을 뭘 세상 태어나 처음 인식했다는 듯이 새삼스럽게. 그러게말입니다. 그 뒤로 어떤 과일이든 가능한 한 낱개로만 사거나 받았다는건, 일상범주의 이야기. 그러니까 설마라도 이 소설이 아드레날린의 폭발적인 분비를 유발하는 킬러 미스터리 서스펜스인 줄 알고 선택 했을 누군가에게는, 번지수가 달라 미안하다는 이야기...(중략)...마지막까지 대 출혈 자폭 서비스. 그래서 당신의 결론은 破果입니까, 破瓜입니까.(pp.335-336)
참고로 작가는 파과를 동음이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파과(破果)는 흠집이 난 과일을 말한다.
또다른 파과(破瓜)는 여자 나이 16세를 뜻하는 말과 남자의 나이 64세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저자는 이 두 뜻을 조각의 이야기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듯하다.
조각은 어려서부터 살인청부업을 했다. 다른 소녀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청부업을 은퇴하게 된 60대가 되었을 때 조각은 이제서야 소녀스러운 평범한 삶을 살게 되었다.
늙고 병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오히려 조각은 평범한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파과인지 파과인지는 나이가 중요한게 아니고 상황이 중요한게 아니다.
파과임을 인정하고 파과로서 살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조각의 삶을 통해 작가는 질문한다. 당신은 파과인가 파과인가? 그것은 외부적인 요소가 결정해주는게 아니라 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스릴감있고, 그안에 깊은 통찰이 있어서 좋은 책이었다. 다만, 구병모 작가의 서술 방식이 만연체 형태이기 때문에 글을 읽다가 보면 무슨 이야기였지 하고 맥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간결한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기 버거울수도 있겠다. 최근에 뮤지컬도 나왔는데 보고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