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학의 자리(정해연) - 인정받고 싶은 나르시시스트

'홍학의 자리'는 정해연작가의 작품으로 스릴러물이다. '유괴의 날'을 읽어본 이후 정해연 작가의 스릴러물에 나름 재미를 느낀 나머지 이 작품도 읽어보았다. 반전이 있어 스포금지 소설로 알려저 있는 책이기도 하다. 


홍학의 자리 책표지 그림

 

줄거리

고등학교 교사인 준후는 자신이 맡고 있는 학생 다현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어느날 늦은 밤까지 학교에 남아있던 준후를 다현이 찾아온다. 둘은 몰래 교실에서 정사를 나누고 준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교실에서 다현은 죽는다. 

교실로 돌아온 준후는 자신이 범인으로 몰릴 것을 염려해 다현의 시체를 근처 호수에 빠뜨린다. 며칠 후 학생 실종사건으로 접수된 다현의 사건은 담당형사인 강치수에 의해 조사가 진행된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다현을 죽인 용의자가 수사선상에 오르게 되면서 몰랐던 다현의 이야기를 준후는 듣게 된다. 

그와중에 황충권이라는 학교 관리인이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사건은 더욱더 미궁속으로 빠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강치수의 끈질긴 수사로 범인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리고 모든 증거들이 준후를 향해 모아진다. 

그러나 모든 수사를 마친 강치수는 실상 다현을 죽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다현은 자살한 것이었다. 그러나 준후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듯 모든 죄를 인정하고 구속된다. 

밑줄긋기

그는 번개를 맞은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반사적으로 창을 향해 달려들었다. 창밖으로 랜턴을 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는 경비원의 모습이 보였다.

조사를 하면 자신이 다현을 죽인 살인범이 아니라는 것은 밝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유부남의 몸으로 미성년 학생과 관계를 했다. 준후는 믿을 수 없는 눈길로 다현의 시신을 보았다. 사실이 알려지면 파멸이다.

안 될 일이었다.(p.27)

하지만 그것만은 알고 싶었다. 다현은 어떻게 죽었는가. 차라리 즉사했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준후는 강치수 형사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강치수 형사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빛이 스쳤다. 자신을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지만 그의 표정이 의아했다.

강치수 형사가 차에 앉아 밖을 내다보는 박인재 형사와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준후는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을 태웠다. 이 대답을 듣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가 어디선가 울리는 듯했다.

이윽고 강치수 형사가 결심했다는 듯 준후를 보았다. “채다현 학생의 사인은…….”
그는 유감을 표하듯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익사입니다. (pp.117-118)

“다현이가 아니었어도 이혼할 거였어.”
“난 당신을 잘 알아요.”
영주가 준후를 따라 벌떡 일어섰다. 준후는 말끄러미 그녀를 보았다. 다현도 그랬다. 선생님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안다고 말했다. 왜 ‘안다는 것’에 그렇게들 집착하는 걸까.

자신을 가장 잘 안다던 다현은 알까? 다현의 죽음에 자신이 그렇게 슬프지 않다는 것을.(pp.265-266)

영주는 이혼을 거부하면서 교사로서의 명예를 협박으로 사용했다. 영주가 모르는게 있다. 준후는 교사로서의 명예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본인의 명예가 중요했다.

아내와 자식을 두고 학생과 그런짓을 한다는, 비난과 환멸의 시선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그런 걸 견딜 바에야 버리는 편이 나았다.
"날 이해해주는 건 당신 뿐이야."
그렇게 말했을 때 영주의 감격하는 표정이 떠올라 웃음이 터졌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타인의 평가에 왜들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p.296)

"말도 안돼! 그게 가능할리 없잖아!" 준후는 저항하듯 벌떡 일어섰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강치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준후를 똑바로 응시했다.

"가능합니다. 남학생이니까요."(p.323)

“그거 아십니까? 홍학은 동성애가 굉장히 많이 발견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수컷과 암컷이 새끼를 낳으면 다른 수컷이 암컷을 밀어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수컷과 수컷 사이에서 큰 새끼는 더욱 강하게 크기 때문에 생존의 문제와도 직결되죠.” 강치수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 얘기를 채다현 학생이 권영주 씨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애는 잘 키워줄 테니 선생님과 헤어져달라고.”

그런 얼토당토않은, 치기 어린 생각을 했었던가. 준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홍학에 그런 의미가 있는 줄은 몰랐다. 홍학이 좋다고 하던 그 아련한 표정 안에 그런 생각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

네덜란드에 함께 가자고 했던 다현의 말이 단지 홍학 때문만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동성 결혼이 합법이었다. 네덜란드로 가려 했던 것은 다현이 생전 가고 싶어 했던 곳이라 가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보고 싶었다. 합법화된 동성 결혼이라도 정말 사람들은 경멸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까.(pp.325-326)

느낀점

정해연 작가의 스릴러물의 특징은 빠른전개와 반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홍학의 자리'도 역시나 깜짝놀랄 반전이 있었다. 마지막에 다현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사람의 편견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사람의 편견이 진실을 못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는는 스릴러물은 경고라고 말한다. 

스릴러는 경고입니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대답이다. 스릴러가 나에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대답한 것은 진심이었다. 스릴러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경고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겪은 어린 시절의 행복이 그 사람을 얼마나 좋은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지보다는, 불행한 어린 시절이 이 사회를 파괴하는 끔찍한 범죄자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고 경고하는 것이 스릴러 작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p.333)

작가는 스릴러물을 통해서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위험들을 경고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번 '홍학의 자리'는 인정에 대한 욕구가 사회에 얼마나 많은 병폐를 주는가에 대해서 말하려 했다고 한다. 

자신의 명예를 최우선으로 하는 김준후는 그무엇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고있는가에 대해 늘 신경쓴다. 다현은 자신을 받아주는 선생님을 유일한 안식처로 생각하며, 영주는 준후에게 준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어필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잃어가는 과정으로 변질되었을 때 어떤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는지 우리는 많은 일을 통해 배웠다.

부모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던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고, 자신을 무시한다며 이웃 주민에게 폭행을 서슴지 않는다.

당신은 누구에게 인정받고자 하는가. 그 인정에 중독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p.334)

작가는 '홍학의 자리'를 통해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결국 한 개인을 불행하게 할 수도 있음을 말하려 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준후와 다현의 관계를 동성연애 관계로 설정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인정에의 욕구'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자기밖에 모르는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경고가 아닌가 생각했다. 준후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인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었다. 

경찰에 잡히는 순간에도 지금 내 모습을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전형적으로 나르시시스트라 생각했다. 일전에 한 강연에서 나르시시스트는 잡혀가는 순간에도 거울을 본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도 생각을 해보니 나르시시스트도 타인에 눈에 비친 자신이 중요한 것인가?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릴러는 경고라고 한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인정에 대한 욕구'와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경계'에 대해 잘생각해보라고 하는 듯 보였다. 

재미있었다. 좋은 책이다. 


정해연작가의 더블 책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