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신론자들의 헛발질'은 기독교 변증서이다.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존 C.레녹스는 오랜 시간 무신론자들과의 토론을 바탕으로 본 책을 집필하였다. 저자는 책을 통해 새롭게 등장하는 신무신론자들의 주장이 헛발질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줄거리
최근 새롭게 등장하는 신 무신론자들의 종교 비판은 이전과 그 양상이 사뭇다르다. 이전의 무신론자들이 종교의 주장들이 가짜라는 것을 드러내려 했다면, 현대 무신론자들은 종교는 인간에게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아니 오히려 인류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임을 증명하려 한다. 대표적인 신무신론자로는 리처드 도킨스, 대니엘 데닛, 샘 해리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이 있다. 이들은 배타적인 종교신념들이 폭력을 양산해 내고 전쟁을 읽으키고 사회를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존 C.레녹스는 '현대무신론자들의 헛발질'에서 사회의 폭력과 기근 전쟁에 대한 문제는 종교 때문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문제임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스탈린, 마오쩌둥, 폴포트와 같은 학살은 공식적으로 무신론자들의 작품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종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고, 종교 때문에 학살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들의 억지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오히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본다면 하나님의 공평하고 정의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로 인해 세상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현대 무신론자들의 헛발질'은 기독교의 참 가치는 현대에도 필요한 것이며, 인류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 기독교의 자리와 역할을 다시 재고해 보도록 돕는다.
밑줄들
그렇지만 나는 존레논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을 말해도 양해해주기 바란다....나는 당신에게 무신론이 없는 세상도 상상해보라고 요청하고 싶다. 20세기 최악의 대량 범죄 중 일부에 책임이 있는, 공식적으로 무신론적인 3개국의 수반들만 거명하자면(무신론자가 없는 세상에는) 스탈린이 없고, 마오쩌둥도 없으며, 폴포트도 없을 것이다. 강제노동수용소가 없고, 문화혁명이 없으며, 킬링필드가 없는 세상, 부모가 자녀에게 부모의 믿음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부모들에게서 자녀들을 떼어 놓는 일이 없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 대한 고등교육을 거절하는 일이 없고, 일터에서 신자들에게 대한 차별이 없고, 예배장소에 대한 강탈, 피괴와 소각이 없는 상상해보라. 그러한 세상도 상상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p.143)
오늘날 남아 있는 신약 원본은 없다. 우리가 갖고 있는시본들은 수백 년에 걸친 복사 과정의 결과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사본이 어떻게 원본 텍스트와유사할수 있겠는지 궁금해 한다. 이 어려움은 일반적으로 현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텍스트가 사실상 신약의 원본 텍스트라는 증거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모르는사람들이 느끼는 것이다.....현재 우리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본들을 가지고 있다.그리스어 원어로 써진 5,6647개의 부분적이거나 완전한 신약 사본들의 목록이 작성되어 있으며, 라틴어, 시리아어, 롭트어, 아랍어 퉁으로 된 초기번역본들이 9,000 개가 넘는다. 이에 더하여 기원후 2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저술했던 초기 교부들에 의해 신약에서 인용된 38,289 개의 인용문들이있다. 그래서 만일 신약의 사본들을 모두 분실한다 하더라도 이 인용문들로부터 (11개절들을 제외한) 신약 전체를 재구성할수 있다. 사본이 지지하는 이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기 위해서는 다른고대 문학 작품들에 대해 구할 수 있는 문헌 증거와 비교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기원후 116년경에 『로마 제국 연대기』(The Annals of Imperial Rome)를 썼다. 이 『연대기』의 처음 여섯 권의책들은 기원후 850년경에 필사된 사본 하나만 남아 있다. 11 권에서 16권까지는 11 세기에 펼시된 또 하나의 사본이다. 그러므로사본 증거는 매우 빈약하며, 원전과 남아 있는 가장 초기 사본 사이의 시간차는 700년이념는다.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해 그리스어로 써진 『유대전쟁사』(The jewish war)에 대한 문헌 증거는 10세기에서 12세기에 필사된 사본 아홉 부, 4세기의 라틴어 번역본 한 부, 그리고 11 세기와 12세기로 소급하는 러시아어판 몇 부로 구성되어 있다. 문서의 지지가 가장 많은 고대 세속 작품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iad, 기원전800년경)인데, 이에 대해서는 기원후 2세기 이후에 제작된 필사본 643개가 있다. 따라서 이 경우 원본과 현존하는 가장 초기 사본들 사이의 시간 차이는 1000년이다. 여기서 말하려는 주된 요점은 학자들은 사본들이 적고 (원본보다 아주) 후대에 제작되었음에도 이 문서들이 원본을 진실 되게 표시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이 문서들과 비교할 때 신약은 고대 세계에서 제작된 문서 중 월등하게 가장잘 획증된 문서다.(p.323)
역사 연구와 고고학 연구는 누가의 역사가로서의 높은 지위를 거듭 확인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위에서 누가가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작 시기를 “리사니아스(개역개정에서는 루사니아)가 아빌라(개역개정에서는 아빌레네)의 영주였을때”라고 기록한 것을 인용했다. 리사니아스는 영주가 아니었고 반세기 전에 칼키스(Chalcis))의 통치자였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이 기록은 오랫동안 누가가 역사가로서 진지하게 취급될 수 없다는 증거로 인용되었다 하지만 티베리우스 황제 때(기원후 14-37)에 리사니아스라는 어떤 사람을 정확히 누가가 말한바 대로 다마스쿠스 근처의 아빌라영주라고 부르는 비명(牌銘) 이 발견되자 비판지들은 입을 디물게 되었다!(p.329)
신무신론자들은 성경의 하나님은 두려운 천재적 창조성과 능력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피조물과 그 일부인 인간을 돌보는 동정, 자비, 정의, 아름다움, 거룩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이기도 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지만, 이 점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특별하다. 모든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따라서 무한한 가치가 있다. 이 가르침은 우리들 대부분이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가치들, 특히 각 개인의 생명, 인권 그리고 양성평등이라는 서구의 가치 개념의 배후에 놓여 있고, 이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에 이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_ 5장(성경의 하나님은 폭군인가?)」중에서
무신론은 죽음에 대한 답이 없다. 무신론은 제공할 궁극적인 희망이 없다. 무신론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존재했다는 마지막 흔적마저도 불태워버릴 공허하고 메마른 세계관이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희망이 없는 철학이다. 무신론의 이야기는 무덤에서 끝난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더 큰 이야기의 문을 연다. 그것이 참된 이야기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_9장(최종 고찰)」중에서
느낀점
'현대 무신론자들의 헛발질'을 집필한 존 C.레녹스는 신학자가 아니라 수학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설득력 있는 기독교 변증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현대로 올수록 사람들의 종교성은 사라지고 있다.
이는 비단 기독교뿐 아니라 종교인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이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냥 종교가 필요없다고 한다면 뭐라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소위 신무신론자들은 종교의 무의미성을 넘어 종교가 인류에 악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필요없다는 거이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말한 사람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레베카 맥클러 플린의 '기독교가 직면한 12가지 질문'에서는 그래도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더 더 긍정적 삶을 산다는 결과를 이야기한 적 있다.
2016년에 하버드 보건대학원 교수인 타일러 밴더월레와 저널리스트인 존 시니프가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 에 "종교는 특효약일 수 있다”는 제목으로 외부 기고문을 썼다. ” 그 글은 이 렇게 시작한다. ’‘수백만 미국인의 심신 건강을 (개인 비용 한 푼 둘이지 않고서) 항싱시킬 단 하나의 영약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그것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겠는가?” 두 저자는 이어서 심신 건강의 유익을 개략적으로 설명하는데, 그 유익은 꾸준한 신앙생활(미국인 대부분에게 는 교회 출석)과 연관성이 있어서, 50년에 걸쳐 사망률을 20-30퍼센트 줄여 주기까지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꾸준히 예배 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더 낙천적 이고, 우울증 발생률이 낮으며, 자살 가능성이 적고, 인생의 목적이 더 원대하며 , 이혼 가능성이 적고, 자제력이 강하다._기독교가 직면한 12가지 질문(레베카 맥클러 플린 저)(pp.23-24)
물론 사람이 스스로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이 나쁜 것이다. 종교의 참의미를 안다면 삶이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여러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