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낀점
'쇼코의 미소'라는 최은영작가의 소설집을 읽고 꽤나 인상이 깊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최은영작가의 책들을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최은영작가의 특징은 관계에 있어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을 잘 풀어내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세대간에 이어지는 갈등들을 잘풀어낸다고 느꼈습니다. 이번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역시 사람사이에 생기는 갈등에 대해서 말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세대간의 갈등이라기 보다는 가까운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이야기한다고 보여집니다.
책에는 총 7개의 에피스드가 있습니다. 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작은 갈등입니다. 가족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이외에도 일관계, 선후배, 동료 등등 다양한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 다루었습니다.
7개의 다른 이야기이지만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무시'입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알게모르게 무시하는 것, 선배이기 때문에, 직장상사이기 때문에, 동료이기 때문에 무심결에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 그것이 갈등의 주요인으로 나타납니다.
그녀가 버지니아 울프로 박사 논문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그녀를 가르칠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정교수의 수업이나 남자 강사의 수업에서는 결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의 그런 무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지적하지 않았다. 그럴 가치조차 없다는 듯이._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편(p.28)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왜 그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해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따끔 거릴 뿐, 그녀는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사실 그녀는 그날 사람들에게 다른 식으로 말할 수도 있었으니까. 다희씨랑은 말이 잘 통해서 친해졌어요. 아, 다희씨 없는데서 다희씨 이야기하고 싶진 않은데요. 그렇게 말하면 따라 붙을 질문이 귀찮고, 어색해질 공기가 두려워 그렇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었으니까._일년 편(p.120)
나는 언니를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여겼어. 멍청해서 이용 당한다고 생각했고 쓰레기같은 남자에게 휘둘리는 겁쟁이라고 생각했어. 불행에 주저앉은 채 탈출할 생각도 하지 않을 정도로 수동적인, 그래서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인간이라고 판단했어. 그런식으로 살아서 나에게 굴욕감을 준다고 믿었지. 언니가 과연 내 마음을 몰랐을까. 그때의 나는 내가 꽤나 마음을 잘 숨긴다고 생각했었어. 마음의 밑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언니와는 다르다고 자부 했지 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는지도 몰라._답신 편(p.176)
사람은 성장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삽니다. 책에서는 그런 관계속에서 무심결에 상대방을 무시할수도 있고 또 상대방을 오해해서 서운함을 갖고 그것이 상처가 되어 관계가 멀어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이런 갈등이 생기는 이유가 자신도 모르게 갖는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영향을 주는 쪽이라고 늘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상호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늘 겸손하며, 역지사지하고, 입을 신중하게 놀려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전과 다르게 아쉬웠던 점은 책의 분위기나 내용이 이전에 보았던 소설과 비슷했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이모에게'는 '밝은 밤'과 약간은 비슷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또 한가지는 갈등의 해소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열린결말로 끝을 낸 것일 수 있지만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부분을 잘 표현하는 작가의 작품은 늘 깊은 생각거리를 줍니다. 좋은 책이었습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뒤늦게 학업을 시작하여 만난 교수를 통해 작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됩니다. 교수가 되고 싶은 그녀에게 교수는 약간 실망했다는 투로 말하며 교수의 세계의 어려움에 대해 말합니다. 교수의 말을 무시한 채 교수가 된 그녀는 그 날 이후 소식을 알수없게 된 교수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자 힘이었으리라는 생각도 한다. 자신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겪는 부당함을 인지하면서도 인정은 하지 않으려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 마음이 그녀를 지켜주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동의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는 마음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p.42)
-일년
어려서부터 우애가 좋았던 동생은 학생시절 만난 학교선생과 결혼한 언니를 늘 보호하려하니다. 어느날 형부가 자신의 학생과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이를두고 갈등상황에 놓이지만 정작 언니는 늘 형부편이었습니다. 결국 사건이 터지고 언니의 거짓증언으로 인해 동생은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자신이 언니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무시했고 그로인해 언니가 그렇게 행동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어른이 된 지금, 길을 걷다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여자아이들을 보면 놀라운 마음이 들어. 어떻게 저렇게 어린 아이들을 이용할 수 있지? 그저 지켜줘야 할 아이들일 뿐이잖아. 하지만 어렸을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대체 얼마나 까졌으면 자기선생이랑 놀아? 미쳤어? 더러워. 난 그게 다 여자애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지 . 얼빠지고 정신이 나가고 멍청해서 그런 짓을 하고 다닌다고 믿었어. 언니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됐어 아닐 거야.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닐 거야 나 자신을 열심히 설득 하려 했지만 언니는 자신을 숨기는 일에 서툴렀고 나는 그런 언니에게 분노를 느꼈어. 이럴 거면 제대로 숨기기라도 해. 마음속으로 소리쳤지.(p.135)
-이모에게
희진은 어려서부터 이모를 좋아했다. 이모 역시 희진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열등감에 완고한 이모의 모습을 보며 적잖은 실망을 합니다. 하지만 어느날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이모와 꼭 닮았음을 희진은 깨닫게 됩니다.
그날 나는 이모의 얼굴에서 나의 모습을 봤다. 까다롭고 기준이 높은 그래서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웃음에 인색한 얼굴을. 이모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느꼈던 내 마음을 선선히 인정했다 내가 거듭해서 이모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결국 비슷한 주름을 얼굴에 새기면서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만 늘려가는 인간이 될 까봐, 자기 상처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의 상처는 무시하고 별것도 아니라고 얄잡아 보는 편협하고 어두운 인간이 될까 봐 겁이 났다는 사실을...(중략)...이모를 은근히 무시하고 하대하는 아빠의 모습에 분노하면서도 나는,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은 언제나 이모를 나보다 낮은 곳에있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뭐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인 것처럼 군다고 삐딱하게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모를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내 모습을 부정했다.(p.257,265)
작가소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집필한 최은영작가는 1984년 광명시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왔습니다. 2013년 작가활동을 시작하며 '쇼코의 미소', '밝은 밤', '내게 무해한 사람'등의 작품을 집필했습니다.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 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7가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으로 평소 작가가 느끼는 삶을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라 합니다. 함께 성장하는 작가로서 세대를 아우르는 위로의 이야기를 잘쓰는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