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선혁과 원택 그리고 필진은 고등학교 시절 삼인방이라 불리는 친한 친구 사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후 평범하게 살아오던 선혁은 원택의 부고소식을 듣게 된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선혁은 필진과 함께 원택의 빈소를 찾는다.
조문을 마치고 식사를 하려고 하는 선혁과 필진에게 형사가 다가온다. 형사는 두 사람이 원택과 친한 사이임을 확인하고 두 사람앞에 원택이 죽을 때 발견된 쪽지를 보여준다. 그 쪽지의 내용을 본 선혁과 필진은 두 눈을 의심한다.
그 쪽지에는 9년전 삼인방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9년전 서울에서 마을로 수학여행 온 학생 중 한명의 돈을 빼앗으려다 삼인방은 학생을 살해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건은 학생의 실종으로 마무리가 되고 삼인방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채 졸업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건을 아는듯한 사람에 의해 원택이 살해된 것이다. 놀란 선혁과 필진은 서울에서 다시 만나 일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로 한다. 그렇지만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필진은 살해당한 상태였다.
점점 살해위협에 불안함을 느낀 선혁은 경찰을 피해 살해자를 찾아나선다. 조금씩 실마리를 풀어가는 선혁. 그러나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을 때 선혁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처음 사건이 일어났던 곳.
삼인방이 학생을 죽였던 그 자리를 찾아간다. 그리고는 마지막 선택을 감행한다.
밑줄들
그 순간만큼은 평정을 지킬 수가 없었다. 선혁은 시선을 빼앗긴 듯 두 눈이 종이에 붙박여 있었다. 누군가 휘갈겨 쓴 글씨는 마법처럼 선혁의 심장을 갈라놓았다. 9년 전 너희 삼인방이 한 짓을 이제야 갚을 때가 왔어. - < 누굴 죽였을까, 정해연 > 중에서
절벽 옆이라 위험하기도 했을 터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본 사람도 없고, 행여 시신이 발견된다고 해도 죽인 것이 삼인방이라는 증거는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아무런 증거가 없을까? 그때의 그들은 어렸다. 지금보다 훨씬 주의력이 없었다. 원택은 그때 담배를 피웠다. 꽁초를 어디다 버렸을까? 땅을 파고 다시 묻을 때 필진이나 자신이 흘린 증거는 없을까? 몸싸움을 하면 그 증거가 피해자의 몸에 남기도 한다고 들었다. 당시엔 그런 것은 하나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 < 누굴 죽였을까, 정해연 > 중에서
강차열이 대답을 하지 않고 있자 본부장은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더 이상 지속하기엔 증거가 없어, 증거가. 그렇게 짜맞춰서 우리가 고집부릴 일이 아니야. 연쇄살인범이 아직 더 남았다고 기사라도 나면, 시민들 불안은 어떻게 할 거야?” 시민들 불안이 아니라 경찰의 무능이 드러나는 것이 더 두렵다는 것쯤은 그곳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차열은 여기서 일이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 < 누굴 죽였을까, 정해연 > 중에서
제가 죽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녀는, 자살할 겁니다.” 오선혁이 이승주가 체포되도록 불러낸 것은 그녀의 자살을 막기 위함이었다. 강차열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아버지도, 오빠도 모두 죽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살인자가 되었다. 오빠의 마지막 복수 대상인 오선혁만 처리한다면 자신은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다. 이승주를 향한 오선혁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아, 그랬군요. 안타까운 일이네요.” ‘잠깐.’ - < 누굴 죽였을까, 정해연 > 중에서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처럼 정신도 몽롱해져 갔다. 그 속에서 선혁은 생각했다. 이승훈을 죽였다. 그 때문에 필진과 원택이 죽었다. 백도진이 죽었으며, 이승훈의 아버지도 죽었다. 이승주는 몸을 팔아야 했고, 이자희가 되어야 했으며 원수 같은 놈의 옆에서 웃어야만 했다. 이제 자신도 죽을 것이다. 자희는 살아남았지만 그녀에게서 자살의 욕구가 사라졌을지는 미지수였다. 어쩌면 그녀 역시 자유의 몸이 되는 순간 자살할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떠올리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우린 누굴 죽인 걸까? 더 생각하려고 했지만, 거기에서 선혁의 정신이 암흑 속으로 떨어졌다. - < 누굴 죽였을까, 정해연 > 중에서
느낀점
정해연 작가의 '누굴 죽였을까'는 삼인방이 저지른 살인이 한 학생에게만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그 주변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피해자의 가족들 역시 피해자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책에서 보여준다.
어쩌면 삼인방은 별다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불량한 짓을 저질렀고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서 처벌받지 않자 별다른 생각없이 살았다. 원택이 자신이 한 일을 술을 마시며 떠버리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삼인방도 이미 잊어버렸을 것이다.
반성하고 있다. 후회도 하고 있다. 9년 전 그런 일을 벌이지 말았어야 했다. 지갑을 돌려달라는 그 아이에게 지갑을 주고 돌려보냈어야 했다. 도망가는 그 아이를 쫓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을 쳤다고 분노하는 원택을 말렸어야 했다. 죽였더라도, 자수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똑같은 일을 벌이지 않았을 거라고 선혁은 자신할 수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친구들과 끼리끼리 돌아다니며 낄낄거리는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우정이었다. 원택은 임신한 선생님을 폭행한 일로 불구속 상태로 경찰 조사까지 받고 있었다. 거기다 살인까지 알려지면 인생이 망가지는 거였다. 느닷없이 죽임을 당한 피해자보다 사람을 죽인 친구의 인생이 훨씬 무게가 컸던, 말도 안 되는 시절이었다. - < 누굴 죽였을까, 정해연 > 중에서
그동안 피해자의 가족과 주변사람들은 고통속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9년동안 삼인방은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한사람의 인생을 망쳐놓고는 자신들은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정해연작가는 '누굴 죽였을까'라는 제목을 통해서 학생 한명만 죽인걸까? 라는 질문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범죄는 피해자 한명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가볍게 생각하면 안된다.
최근에 어처구니 없는 솜방망이 처벌을 두고 여기저기 탄식이 흘러나온다. 책에서도 범죄가 일어났을 당시 삼인방을 올바로 처벌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가해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죽이는 법정을 이제 고칠 때가 된 것 같다.
여러모로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고, 여운도 많이 남는 좋은 책이었다.